통신 방송융합 서비스가 정부 기관의 의견 충돌로 제도적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진국들의 정책적 해결 사례가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국내의 경우 통ㆍ방융합을 관리할 법 제도는 물론이고 주무 기관조차 불명확한 실정이다.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협력은커녕 서로 고유 영역을 주장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은 새롭게 떠오른 통ㆍ방융합 서비스에 맞춰 정부 정책과 규제 방법을 디지털 환경에 맞도록 조정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규제를 줄이고 관리기구를 일원화한 선진국들의 통ㆍ방융합정책은 결국 정부 당국이 아닌 이용자의 관점에서 정책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규제는 최소화, 관리기구는 일원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먼저 규제 방법을 바꾼 곳은 미국이다. 미국은 1996년 통신법 제정이후 통신과 방송의 상호진입을 허용하고 있다. 96년 이전의 통신법은 유선, 무선통신, 인터넷, 방송 등을 각기 다른 시장으로 보고 별도 규제를 적용해 왔으나 통ㆍ방융합 시대에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통신법을 개정하면서 정부의 관리기구도 연방통신위원회(FCC)로 일원화해 혼선을 줄인 점이 특징이다. 현재 FCC는 전통적인 통신ㆍ방송부문 및 인터넷TV(IPTV) 등 신규 서비스까지 총괄하고 있다. 특히 초고속인터넷에 기반을 둔 새로운 서비스에 대해서는 정보서비스로 분류해 최소한의 규제만 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통신분야는 84년 제정된 전기통신사업법으로, 방송분야는 방송법에 따라 각각 규제하는 이원적인 법체계를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관리기구는 총무성으로 일원화했다. 총무성은 통ㆍ방융합 서비스를 위해 2002년 전기통신역무이용 방송법을 제정해 IPTV 등 통신사업자의 방송서비스를 허용했다.
영국은 통ㆍ방융합 환경에 맞춰 2003년 7월 ‘통신법 2003’을 공표하고 통합규제기관인 오프콤(Ofcom)을 신설했다. 통신위원회, 방송기준위원회, 라디오위원회, 무선통신국 등을 통합한 오프콤은 통신정책담당인 통상산업부, 방송정책담당인 문화매체스포츠부와 별개로 독립성을 유지한 채 통ㆍ방융합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특히 통신법 2003은 콘텐츠를 전송하는 유ㆍ무선 네트워크를 모두 전자통신망이라는 단일 개념으로 정의하고 콘텐츠와 네트워크를 분리해 규제하고 있다. 오프콤은 네트워크만 규제하며 콘텐츠의 경우 방송서비스는 민간기구인 주문형 TV협회(ATVOD)가 맡고 있고 인터넷 콘텐츠는 인터넷 감시재단이 담당한다.
프랑스는 통신규제청이 네트워크를, 시청각최고평의회가 방송프로그램의 사후 심의 등을 맡는 등 관리기구가 이원화돼 있으나 콩세이유 데타(Conseil D’eat)에서 이를 총괄 조정하고 있다. 수상자문 겸 최고행정재판기구인 콩세이유 데타는 정부 기관 사이에 이견이나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또 통신규제청과 시청각최고평의회 협의 아래 2004년 전자 및 시청각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법(LCE)을 제정해 통ㆍ방융합서비스에 대응하고 있다. 이 법은 과거에 허가가 필요했던 통신망 설립, 전화서비스 공급 사업 등을 단순 등록제로 바꿔놓아 절차를 대폭 간소화했다. 아울러 관련 기구의 규제 또한 상당 부분 축소했다.
통ㆍ방융합추진위원회 서둘러야
선진국들의 이 같은 통ㆍ방융합 정책 및 기구 변화를 감안해 국내에도 일정 부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국전산원 류석상 유비쿼터스 전략연구팀장은 “서비스 이후 발생하는 문제들은 사후 규제를 통해 조정할 수 있으므로 가능한 진입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통ㆍ방융합 서비스의 조속한 서비스를 위해서는 정책 및 관리 기구의 일원화가 절실하다. 현재 인터넷방송의 경우 통신업체가 제공할 땐 전기통신사업법상 부가통신에 해당돼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 내용 심의를 하고, 방송업체가 서비스할 경우 방송법에 따라 방송위원회가 심의를 한다. 심의 기준이 달라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인해 국무조정실에서 추진하는 통ㆍ방융합추진위원회에 대한 관련업계의 기대가 크다. 국무총리실 산하에 범독립기구로 설치될 통ㆍ방융합추진위원회는 통신과 방송의 융합과 관련한 각종 정책을 마련하게 된다. 이 위원회는 당초 10일에 출범할 예정이었으나 총리 교체로 지연돼 이달 말로 연기됐다. 위원회가 발족하면 정통부, 방송위 등 관계 부처 및 전문가들이 참여해 장기적인 통ㆍ방융합 정책을 준비할 예정이다.
한국전산원 김현경 선임연구원은 “개별 사안마다 관련 기관별로 개입하면 신규 서비스 추진이 힘들고 이용자들에게도 혼란을 초래한다”며 “그런 점에서 통ㆍ방융합추진위의 발족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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