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경매에서 팔린 그림에 대해 또 다시 가짜라는 주장이 나와, 경매의 신뢰도를 높일 제도적 장치 마련하는 등 재발 방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화가 변시지(80)씨는 지난달 26일 서울옥션(대표 윤철규) 경매에서 1,150만원에 낙찰된 자신의 10호 짜리 그림 ‘제주 풍경’이 가짜라며 작품 회수와 범인 색출을 요구했다.
변씨는 “화면 구도와 색채 사용 등으로 볼 때 아마추어가 그린 조악한 그림”이라며 “작가에게 확인도 안 해 보고 철저한 검증 없이 위작을 경매에 낸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옥션은 “문제의 그림은 위탁자가 변 화백의 친구 K씨를 통해 구입해서 갖고 있던 것”이라며 “K씨가 수일 내로 변 화백을 만나 실물을 보여주고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옥션의 경매 출품작 시비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3월 경매에 나온 이중섭 그림 4점이 1년 간의 논란 끝에 검찰에서 위작으로 판명된 데 이어, 올해 2월에는 불화 ‘팔상도’ 2폭을 경매 도록에 실었다가 순천 선암사가 1980년 도난당한 것임이 경찰 수사에서 밝혀져 경매에서 뺐다.
가짜와 장물 파문이 계속됨에 따라 해당 경매사의 신용 추락은 물론 경매에 참여하는 고객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경매에서 작품을 산 사람이 외부 기관에 재감정을 의뢰하는 일이 늘고 있다. 현재 국내 경매사들은 학자와 작가 등 3, 4명으로 감정 위원단을 구성해 작품당 20~30분씩 감정을 실시하고 있다.
미술계는 이러한 현상이 전체 미술 시장에 끼치는 해악을 우려, 미술품 경매 관련 법규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출품작 검증을 강화하고 경매의 투명성을 확보할 제도적 장치가 없으면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질 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국내에는 미술품 경매에 관한 법규가 전혀 없다. 누구든 사업자 등록증만 내면 경매 회사를 차릴 수 있다. 감정 전문가가 몇 명 있어야 한다는 식의 자격 규정도 물론 없다. 한국화랑협회는 미술품 경매 유통 질서에 관한 법 제정을 청원한다는 계획에 따라 5월에 이에 관한 세미나를 열 예정이다.
많은 중소 화랑들은 국내 대표적인 대형 화랑 두 곳이 두 경매 회사에 각각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고 있다. 대형 화랑이 경매 회사까지 거느림으로써 미술 시장을 독점하고 유통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은 1998년 출발한 서울옥션과 지난해 9월 설립된 K옥션을 양대 축으로 해서 날로 규모가 커지고 있다. 서울옥션의 98년 경매 낙찰 실적은 34건 3억원에 불과했으나, K옥션이 가세하기 시작한 지난해 두 회사의 실적 합계는 809건 17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조윤정기자 yj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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