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시에 사는 주부 서모(39)씨는 올해 1월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의 휴대폰 요금 청구서를 받고는 깜짝 놀랐다. 평소 4만~5만원 가량 나오던 요금이 87만원으로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내역을 알아보니 주범은 무선인터넷 이용 요금이었다. 겨울 방학을 맞은 아들이 엄마 몰래 무선인터넷으로 만화영화를 몇 번 시청한 게 화근이었다. 요금 고지서에는 데이터 통화료 항목에만 80만원 가까운 액수가 부과돼 있었다.
서씨는 즉시 대리점을 찾아가 아들이 무선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도록 잠금기능을 요청했다. 또 대기업 부장인 남편 휴대폰만 빼고, 자신과 두 자녀의 요금제를 일정 용량을 쓰면 더 이상 쓸 수 없는 정액제(월 2만5,000~3만2,000원)로 바꿨다. 이후 월 평균 30만원 가량 나오던 네 가족의 휴대폰 요금은 15만원 선으로 절반이나 줄었다.
회사원 김모(43ㆍ서울 동작구 상도동)씨는 지난해 가을 청소년의 40% 가량이 휴대폰 중독증상을 보인다는 보도에 충격을 받아, 가족회의를 열고는 1주일에 하루를 ‘휴대폰 휴식일’로 정했다.
일요일에는 가족들이 휴대폰을 반납하고 유선전화만 이용키로 한 것이다. 이렇게 휴대폰 사용을 자제하면서 올들어 통신비가 20% 가량 감소했다. 김씨는 “한 달에 5만원만 절약해도 10년이면 1,000만원 가까운 목돈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주부 정모(41ㆍ서울 양천구 목동)씨는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TV 안보기 운동’에 참여한 이후 매달 150만원 가량 나오던 카드 값이 절반으로 줄었다. 가계부를 비교해 보니 그동안 돈이 어디로 샜는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홈쇼핑으로 불필요한 옷이나 액세서리, 식품류 등을 구입한 비용이 월 30만~40만원이나 됐다. TV 광고에 현혹돼 배달 음식을 시켜 먹거나 드라마에 나오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느라 지출한 비용도 상당했다.
정씨는 “남편 월급 만으로는 언제나 돈이 모자라고 빠듯해 월말을 지내기가 고통스러울 정도였는데, TV를 보지 않으면서 생활비가 3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디지털과의 접속을 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교육적인 효과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디지털 관련 지출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 가구 보급률은 1999년 1.9%에서 2004년 73.0%로 급증했고, 전체 가계 소비에서 IT관련 소비 비중은 96년 4.4%에서 2004년 9.2%로 2배 이상 늘었다.
재테크 전문가들은 디지털 기기에 매몰된 사람 치고 부자가 많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 가난한 사람일수록 디지털 기기 교체주기가 짧고 접속량도 많다.
집은 없어도 최신형 휴대폰과 평면 LCD TV, HD TV, 인터넷TV 등을 구입하는 데는 목돈을 아끼지 않는다. 필요한 물품을 계획적으로 구매하기 보다는,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소비 경향을 보인다는 말이다. 1주일에 1시간 정도 TV를 덜 보면 1년에 200달러 더 저축한다는 미국의 통계자료도 있다.
디지털 과소비 추방운동을 벌이고 있는 오세훈(46)씨는 “디지털과의 접속을 줄이면 광고에 노출되는 시간도 감소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소비가 크게 줄어든다”며 “소비 본능을 자극하는 홈쇼핑과 인터넷, 휴대폰 등의 디지털 기기만 잘 통제해도 가계부는 흑자로 바뀔 수 있다”고 조언했다.
기획취재팀 고재학(팀장)·조철환·박원기기자 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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