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리조나 템피 예비학교 시간표에는 컴퓨터 수업이 없다. 학생들은 대신 단테의 ‘신곡’, 셰익스피어의 ‘햄릿’,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등을 읽는다. 때론 그리스어나 라틴어 원작을 배워야 한다.
성적을 높이고 돈이 되는 기술을 가르치는데 열중하는 대부분의 공립고교와는 정반대다. 학생과 학부모의 반응도 대단하다. 해마다 정원(330명)보다 몇 배 많은 지원자가 몰리기 때문에 입학에 성공한 학생들은‘복권에 당첨됐다’고 기뻐할 정도다.
학생들은 “정보만이 아니라 어떻게 배워야 하는 지 가르쳐 준다”고 말한다. 교육 전문가들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고 창조하는 능력을 키워준다”고 평가했다. 템피 학교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한 인근 고교 2곳은 교과 과정을 고전 예술 교육 위주로 바꿨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최신호(5월8일자)에서 입시위주 교육을 버리고 새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공립 고교 6곳을 소개했다.
미국의 공립 고교들은 교사진, 시설면에서 사립학교와 격차가 점점 벌어지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교사들은 사기를 잃은 지 오래고 학생들도 학교 생활에 관심이 없다. 그 나마 주입식 교육으로 성적을 올려 대학 진학률을 높인 학교들이 관심을 끄는 정도다.
뉴스위크는 그러나 “학생들의 성향을 세밀하게 분석한 교과 과정을 만들어 시행하는 공립학교들이 늘고 있다”며 “성적이 학교를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라는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고 전했다.
수도 워싱턴의 시저 차베스 공공정책학교는 정치ㆍ행정의 중심지라는 지역 특색을 활용, 학생들에게 공공 정책과 제도를 집중적으로 가르친 뒤 의회와 관련 기관에서 직접 일할 기회를 제공한다. 뉴욕 할렘가에 있는 젊은여성 리더십학교는 이 지역에서 처음 세워진 여학교이다. 빈민가 학생들의 경우 남녀 학생이 한 교실에 있을 경우 학습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판단 아래 따로 학교를 만들었다.
노스캐롤라이나 직업학교는 젊은 일손이 부족하다는 여건과 자식에게 대학 교육을 받게 하고 싶다는 부모의 바람을 감안해 고교를 다니면서 대학 2년 교과 과정을 배우게 했다. 학생들은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머지 대학 2년 교육을 마치게 된다. 덴버 과학 기술학교는 첨단 정보통신(IT)의 혜택을 받지 못한 학생을 여름 보충수업, 대학생 개인 과외 등 강도 높은 교육을 통해 전문가로 육성, 실리콘 밸리에 진출시키고 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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