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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학대·유기 어린이들 미니운동회/ "대롱대롱 매달린게 엄마·아빠 사랑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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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학대·유기 어린이들 미니운동회/ "대롱대롱 매달린게 엄마·아빠 사랑이었으면…"

입력
2006.05.0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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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대면 안돼요!” “선생님, 하나만 더 먹을래요.”

민재(가명ㆍ6)가 반칙을 했다. 과자 따먹기의 규칙은 대롱대롱 매달린 과자를 입으로만 먹어야 하는 것. 하지만 폴짝 뛰고 고개를 휘저어도 야속한 과자는 저만치 있다. 슬쩍 손으로 과자를 낚았다가 야단을 맞았지만 그래도 좋다. 적어도 맞지는 않을 테니까.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수서동의 서울시 아동복지센터에선 어린이날(5일)을 맞아 조금 특별한 운동회가 열렸다. 조촐한 이날 운동회의 주인공은 20여명(3~10세)의 버림받은 아이들이다.

부모에게 신체적, 정서적 학대를 당했거나 경제적 빈곤, 가출 및 이혼 등 가정 해체로 버려졌다. 아이들은 이 곳에서 최장 3개월 동안 머문다. 세 명 중 한 명은 가정 문제가 해결돼 집으로 돌아가고, 나머지는 장기보육시설이나 위탁 가정에 맡겨지거나 입양된다.

구슬 공 집어넣기, 밀가루 속에서 떡 찾아먹기, 줄다리기 등 순서가 이어질 때마다 아이들의 웃음이 커진다. 바리바리 싸온 과자도, 부모의 응원도 없지만 아이들은 마냥 좋아라 하며 풀밭을 내달린다.

하지만 웃음 뒤엔 쉬이 아물지 않는 상처가 있다. 아이들이 해맑게 털어놓는 사연은 기가 막히다. 민재는 창피하다며 늘 모자를 쓰고 다닌다. 머리는 온통 찢기고 베이고 파였다. “엄마가 맴매 했어요.” 자신의 상처에 관심을 보이자 소매를 걷어붙이곤 다른 상처도 내보인다. 온 몸이 멍 투성이다.

석민(가명ㆍ5)이는 담뱃불로 흉측하게 일그러진 피부를 보여준다. 맞아서 뼈가 부러진 오른쪽 팔은 퉁퉁 부어있다. 심지어 달아나는 아이에게 칼이나 망치를 던지는 무정한 부모도 있다고 한다.

학대받은 아이들은 엄마, 아빠 얘기에 몸서리를 친다. “엄마 미워!” “아빠 무서워요.” “집에 가기 싫어요.” 반응도 비슷하다. 송인숙 학대조사 상담원은 “맞고 욕설을 듣는 것뿐 아니라 성적인 학대, 방임 등 학대 유형도 다양하다”고 전했다.

버려지는 아이도 늘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결혼이 주된 원인이라고 한다. 박재형 상담원은 “결혼 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 여성이 가출하면서 남편이 홀로 애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곧 사회 문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이들은 어린이날이 뭔지도 잘 모른다. 소망도 소박하다. 사탕이나 과자, 기껏해야 인형이 갖고 싶을 뿐이다. 그저 자신과 신나게 놀아주고 비슷한 친구도 많은 이곳이 마냥 좋을 뿐이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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