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미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다. 반면 야구는 미국과 카리브해 연안 일부,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 주로 보급돼 있다. 야구는 미국의 스포츠이지만 축구는 한 나라만의 스포츠가 아니다. 축구에는 월드컵이라는 큰 대회가 있지만 야구에는 없다. 극렬 팬 훌리건도 축구에만 있을 뿐 야구에는 없다. 미국의 프로 야구팀은 돈을 많이 버는데 세계의 프로 축구팀은 돈벌이가 시원찮다.
양대 인기 스포츠 축구와 야구를 대비하자면 다른 점이 한 둘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말 삼성이 야구에, 90년대 초 현대가 축구에 뛰어들 때도 두 재벌의 사풍과 두 경기를 연결해 분석하기도 할 정도였다.
‘왜? 세계는 축구에 열광하고 미국은 야구에 열광하나’는 세계의 축구와 야구의 역사, 발전과정, 복잡한 경제적 이해 관계 등을 설명하는 독특한 책이다. 공저자의 폭넓은 시각이 돋보인다. 한 사람의 저자 스테판 지만스키는 영국 런던 임페리얼칼리지에서 스포츠 경제학을, 또 다른 저자 앤드루 짐벌리스트는 미국 스미스칼리지에서 경제학을 각각 가르치고 있다.
축구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비결은 무엇일까? 19세기말, 20세기초 영국의 제국주의적, 상업적 영향력 때문이었다는 것. 당시 영국은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었고 해외 진출이 매우 활발했다. 영국인은 그 곳에서 현지의 부유층 및 권력형 엘리트들과 우호 관계를 맺었는데, 이 때 축구가 좋은 수단이 됐다. 만약 미국의 경제적 지배력이 40년만 빨랐다면 축구보다 야구가 세계적 스포츠가 됐을 지도 모른다는 가설은 그래서 개연성 있다.
축구는 민족주의적 요소가 강하다. 경기의 승리는 국민적 정치적 자긍심의 일부가 됐다. 네덜란드와 독일,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숙적 국가 간의 경기가 특히 그랬다. 독재자들도 축구를 이용했다. 유럽에서는 스페인의 프랑코가 그랬으며 남미에서는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독재자들이 인권 탄압과 경제 정책의 실패를 축구로 만회하려 했다. 아르헨티나는 파산 지경이었지만 1978년 월드컵을 유치했고 예산의 약 10%를 대회 준비에 사용했다.
축구의 민족주의 성향은 훌리건의 탄생과도 관계가 있다. 국가별, 지역별, 언어적 차이에 따른 원한 관계에서 경기에서 분출되기 때문에 폭력 사태가 나타나기도 한다. 게다가 유럽, 남미의 축구장은 대부분 도시 중심부에 있다. 슬럼화하고 범죄가 많으며 젊은이의 접근도 쉬운 편이다. 반면 미국의 야구장은 도시 외곽의 널찍한 곳에 자리해 가족 단위의 관중을 끌어 모았다. 좌석이나 식음료의 질이 축구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좋아서, 관중이 최대한 돈을 쓰게 만들었다.
야구장은 돈을 버는 곳이므로 폭력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축구 구단은 돈 벌이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훌리건을 저지할 필요성도 못 느낀 데다, 일부 구단은 관심을 끌기 위해 도리어 훌리건을 장려한 구단마저 있을 정도다.
야구와 축구는 돈벌이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야구 산업에는 두 가지 불변의 진리가 있다. 공 던질 선수가 없는 팀은 없고, 돈 벌지 않는 팀도 없다.” 돈 페르 미국 야구선수협회 회장의 지적처럼 메이저리그는 돈을 많이 버는데, 여기에는 메이저리그의 폐쇄성이 한몫 단단히 작용한다. 구단들은 연고권의 수와 위치를 통제하고 새로운 구단에는 많은 액수의 입회비를 부과한다. 게다가 기업독점금지법덕에 누리는 여러 예외 때문에 그에 따른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와 달리 축구 리그는 개방적이다. 성적이 부진한 팀은 하위 리그로 내려가고 반대로 우수한 팀은 상위 리그로 올라간다. 입회비를 내지 않고도 하위 리그에 들어가 좋은 성적을 낸 뒤 상위 리그로 올라갈 수 있다. 이로 인해 경쟁이 치열해지고 클럽들은 장기간 독점력을 행사할 후 없게 됐다. 책이 제시하는 실천적 결론은 그 같은 인식의 연장선에 있다. 따라서 축구는 재정적 안정성을 높이고, 야구는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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