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내 25개 아프리카계 모임을 대표하는 아프리카 연합회가 월드컵 개막(6월 9일)을 앞두고 ‘가서는 안될 곳(no-go)’이란 지도를 만들어 공개했다고 영국 텔레그라프지가 30일 보도했다.
이 단체는 아시아ㆍ아프리카계 이민자 등 외국인에 대한 신나치주의자들의 무차별적인 집단 폭행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월드컵 때 독일을 찾을 관광객에게 ‘우범 지대’를 사전에 알려 불상사를 막기 위해 만들었다고 밝혔다.
지도는 인종차별 폭력이 일어났던 술집, 클럽 등을 상세히 소개했다. 6월 18일 한국이 프랑스와 예선전을 치르는 라이프치히 역시 조심해야 할 도시로 꼽혔다.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폭행 사건은 독일 내 인종주의 폭력에 대한 우려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에티오피아계 이민자 에르미야르 무루게카(37)는 21일 밤 포츠담 시내 중심가 버스 정류장에서 신나치주의자들에게 무차별 집단 폭행을 당하고 혼수 상태에 빠졌다.
또 올해 초 아프리카계 12세 소년이 신나치주의자 5명에게 얻어 맞아 의식 불명 상태고 베트남 식당을 운영하는 베트남인도 린치를 당한 뒤 귀가 들리지 않는다.
독일 경찰에 따르면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신나치주의자에 의해 1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현재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극우주의자는 4만1,000명으로 이 중 1만 여명은 과격 행위로 유명한 신나치주의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들은 수도 베를린이 있는 브란덴부르크 주, 작센 주, 작센_안할트 주 등 옛 동독 지역을 주요 근거지로 삼고 있다.
포츠담대 라스 렌스먼 교수는 “통일 전까지 60년 동안 전체주의 체제 아래서 살아온 옛 동독인은 외부인을 두려워 한다”며 “통일되면 잘 살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옛 서독 지역과 소득 격차가 갈수록 커지면서 불만에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실업률이 30%까지 치솟으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이 지역 젊은이들이 극우주의에 열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나치주의자들은 월드컵이야말로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있다. 이들은 6월 11일 이란과 멕시코 경기가 열리는 뉘른베르크에서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지지 행사를 개최한다.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이스라엘은 지도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발언으로 반 유대인 정서를 자극, 독일 신나치주의자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신나치주의자들은 결승전이 열리는 베를린에서도 대규모 행진을 열 계획이다.
비상이 걸린 독일 정부는 이례적으로 포츠담에 연방 검사를 파견, 무루게카 사건 수사를 지휘토록 했다. 현상금(1만8,500달러)도 내걸었다.
특히 동독 출신 첫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로서는 지난해 취임 후 가장 큰 국제 행사인 월드컵을 제대로 치르지 못할 위기에 처한 상태다. 메르켈은 동독 지역 극우주의 세력을 뿌리 뽑겠다며 특별예산 2,350만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