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배우 이준기,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를 좋아하고, MBC 드라마 ‘궁’을 즐겨 봤단다. 지난달 29일 내한한 미국 프로골퍼 미셸 위의 모습은 한국의 여느 10대 소녀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자청해 TV 버라이어티 쇼 녹화에 참여했고, 동대문에 가길 원했으며, 한국에 와서 사흘 내내 떡볶이 순대 등을 먹었다고도 했다. 한국계이기는 하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란 10대 소녀가 거의 실시간으로 한국 대중 문화 콘텐츠를 접하고, 한국 스타들에 열광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이처럼 인터넷 등 매체의 변화는 전세계 사람들이 손쉽게 한국 대중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이를 통해 한류는 아시아권에서 강력한 문화 키워드로 떠올랐다.
이 점에서 가수 비가 미셸 위와 함께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오른 것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올 2월 아시아 가수로는 처음으로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공연을 했지만, 현재 비의 미국 내 영향력은 미미하다. 타임도 “비록 미국에서는 실패할지 몰라도”라며 비의 미국 진출에 의문부호를 달면서도, “아시아의 팝 문화를 사로잡았다”는 것을 선정 이유로 들었다.
그 동안 서구인들에게 ‘세계적 영향력’이란 곧 미국을 비롯한 서구 대중 문화에 대한 영향력을 의미했다. 아시아인이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지려면 올해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브로크백 마운틴’의 리안 감독처럼 미국에서 활동을 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 막 미국 시장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비가 아시아 시장에서의 인기만으로 ‘세계적 영향력’을 지닌 엔터테이너로 꼽혔다는 것은, 그런 인식에 큰 변화가 일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가 타임의 100인 리스트에 오른 것을 기뻐해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비가 한국인이어서, 혹은 미국에서 한국 대중 문화의 힘을 ‘인정’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의 인정 없이도 아시아 대중 문화 시장이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서구 대중 문화 시장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세계를 확립하고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에 기뻐할 일이다.
이제 세계의 중심이 변방을 ‘평가’하고 ‘인정’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다만 여러 개의 중심 문화권이 각자의 시장을 이루고 ‘교류’할 것이다. 우리가 미국에서 활동하는 미셸 위에게 관심을 갖듯, 미셸 위 같은 미국의 스타도 한국 대중 문화를 좋아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객원기자 강명석 lennone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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