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未堂) 서정주 시인(1915~2000)이 생전에 모교인 동국대의 올해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미리 쓴 미발표 시가 1일 공개됐다.
미당이 1996년 5월에 쓴 ‘동국대학교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란 제목의 시는 일제의 우리 불교 침탈 시도, 1919년 3ㆍ1운동, 1960년 4ㆍ19혁명 등 한 대학의 역사에 개재돼 있는 우리 근현대사의 큰 고비를 짚으며 민족과 불교의 역사를 돌이키고 있다.
시는38행 원고지 5장 분량으로,‘팔할이 바람’(1988년) ‘산시’(1991년) 등 후기 미당의 시에서 보이는 원숙하고 자유분방한 담론체가 주류를 이룬다.
미당은 1935년 동국대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 59년부터 79년까지 20년간 이 대학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미당은 첫머리에서 “國仙花郞道(국선화랑도)와 佛敎(불교)의 원만한 統合精神(통합정신)을 이어 받아서/ 新羅(신라)의 三國統一(삼국통일)의 힘을 그대로 계승해서/ ‘햇빛 밝은 동쪽의 아침나라’라는 뜻으로”라며 민족사의 원류를 더듬고 있다.
이어 “1910년 엉터리 日本帝國(일본제국)의 强壓(강압)으로/ 못난 李王朝(이왕조)는 日本에 合倂(합병)되어 버렸지만/日本佛敎 曹洞宗(조동종)이 우리 佛敎까지를 병합하려 하자/ 우리의 朴漢永(박한영) 韓龍雲(한용운) 스님은 나서서 맹렬히 반대해/ 이것까지는 못하게 막어 냈나니”란 부분에선 우리 절을 조동종에 편입시키려는 일제의 시도에 임제종을 만들어 저항했던 불교 역사를 회고했다.
동국대는“한국 근대불교의 가장 위험한 시기에 대한 집단 기억이 점차 흐릿해져가는 이즈음 이를 증언하는 노시인의 목소리가 여간 귀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10년 전 미당에게 이 시를 부탁했던 홍기삼 총장은 “미리 100주년 축시를 부탁드리면서 (돌아가실 것을 대비해 미리 부탁하는 것 같아) 면구스러웠다”며 “미당 선생은 ‘100주년을 맞아 써도 될 텐데 벌써 부탁한다’며 호쾌하게 웃었고, 눈치를 채신 듯 알아서 써 주셨다”고 회고했다.
홍 총장은 또 “당시 미당은 농담처럼 200살까지 살겠다고 하셨는데 노년기에 허물어가는 정신력을 보존하려는 것도 있지만 수명이 다해 간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챈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미당은 대외 활동을 거의 중지한 채 곡기를 끊고 맥주로 식사를 대신하는 상황이었다.
동국대는 이 시를 도서관 국보급 귀중본실에 10년간 보관해 왔는데, 올 가을 타임캡슐에 넣은 뒤 100년 뒤인 2106년에 재공개할 예정이다.
안준현 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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