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부터 ‘21세기 세상은 유통이 지배한다’는 법칙을 확립한 월마트는 지난 해 전 세계 5,000여 개 매장에서 우리나라 GDP의 절반에 가까운 3,200억 달러대의 매출을 기록했다. ‘고유가 돈방석’에 올라 앉은 엑손모빌에 5년만에 글로벌 톱 자리를 내줬지만, 업황구조로 볼 때 재탈환은 시간문제다.
비결은 ‘단 1센트의 거품도 허용치 않는다’는 모토에 담긴 두 얼굴 전략이다. 앞 얼굴은 미국 물가를 좌우할 만큼의 철저한 저가전략으로 서민들의 지갑을 윤택하게 하고, 지속적인 ‘지역친화적 사회공헌’으로 주민들의 신뢰를 지켜온 것이다.
▦이른바 ‘소비자 후생의 극대화’라는 이 얼굴의 반대쪽엔 공급업자의 납품가격과 종업원 임금을 후려치고 영세 상인과 재래시장의 생존기반을 일거에 빼앗는 비정한 얼굴이 있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40여년 동안 미국에서만 수만 개의 중소 유통점포가 문을 닫았으며, 수익성에 시달리던 상당수 납품업체들은 해외로 공장을 옮긴 것으로 드러났다. 월마트가 창출한 일자리보다 사라진 일자리가 더 많고 이는 임금 하락으로 연결됐다. 그 결과 최근엔 월마트의 출점 요청을 주민투표로 거부하는 지역도 적지 않다는 소식이다.
▦급기야 월마트는 얼마 전 ‘고용과 기회의 광장’ 정책을 내놓았다. 시카고 등 대도시 주변에서 새로 문을 여는 50개 매장부터 고용을 대폭 늘리고 인근 재래상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재정지원 광고대행 수익모델개발 등에 앞장서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익금의 1% 남짓, 액수로 2억 달러 안팎의 사회환원과 교육ㆍ보육ㆍ양로 등 지역사회의 민원을 두루 살피는 ‘소액다종’ 기부 프로그램으로 수년째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회사’ 반열에 올랐지만 이제 그것만으론 기업의 평판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지역 상권과의 공존을 내세운 월마트의 변신이 장삿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강원 태백시 등의 사례처럼 대형 할인점과 영세상인과의 갈등이 깊어가는 우리 처지에서 새겨볼 점이 많다.
영세상인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은 대형 할인점의 출점을 허가제로 바꾸고 영업시간과 품목을 제한하는 내용의 특별법을 제출한 상태지만, 소비자 후생과 영업자유를 침해하는 이 법안의 앞날은 불투명하다. 해답은 이해당사자들이 상생모델을 궁리하는 것뿐이다. 이랜드가 막판 역전승한 까르푸 인수전을 흥미차원에서 보는 사이에 대형 할인점의 그늘은 짙어가고 있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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