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그룹 비자금이 2002년 불법 대선자금으로 제공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 수사결과 현대차 그룹의 비자금이 2002년 집중적으로 사용됐다는 점이 의혹의 배경이 되고 있다. 2003~2004년 대선자금 수사 때 드러나지 않은 불법 대선자금이 추가로 드러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 회장의 영장에 따르면 2002년 현대차 계열사인 글로비스의 비밀금고에 비자금 311억원이 입금돼 246억원이 그 해 집행됐다. 2000년 145억원, 2001년 88억원, 2003년 78억원, 2004년 37억원, 2005년 22억원을 사용한 것에 비해 눈에 띄게 많은 액수다.
2002년 현대차 본사도 168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역시 29억~97억원에 그쳤던 다른 해보다 월등히 많았다. 특히 대선을 앞둔 2002년 9~12월 글로비스 비자금 170억원, 현대차 본사 비자금 120억원이 사용됐다.
지난 대선자금 수사에서 검찰은 현대차 그룹이 한나라당에 100억원을, 노무현 캠프에 6억6,000만원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그것도 한나라당에 제공된 100원 중 20억원은 현대캐피탈에서 조성한 비자금이고 나머지 80억원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개인재산이라고 발표했다. 이번에 드러난 글로비스와 현대차 본사 비자금이 아니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내가 받은 대선자금은 한나라당에 비해 10분의 1을 넘지 않는다”고 공언해 “검찰이 ‘짜맞추기 수사’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검찰이 이번에 추가로 불법 대선자금을 밝혀내면 지난번 수사가 부실했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물론 비자금이 다른 용도로 사용됐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현대차 측은 비자금의 대부분을 노무관리비, 해외공장신설 부대비용 등으로 썼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구속된 김재록 인베스투스글로벌 전 대표, 김동훈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에게 준 것처럼 계열사 인수나 부채 탕감,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정ㆍ관계 로비 자금으로 사용했을 수 있다.
진실 규명은 정 회장과 현대차 고위 임원들의 입에 달려 있다. 정 회장은 24일 검찰 조사에서 비자금의 사용처에 대해 함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자금이 대부분 현금으로 집행된 점을 감안할 때 정 회장이 입을 열지 않으면 사용처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검찰이 정 회장의 구속을 필요로 하는 현실적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비난을 면하면서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검찰의 어깨가 무겁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