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하나의 유령이 지금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며 불안한, 한편 불온한 기운을 압축했다.
이어 1881년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릭 입센은 실제로 ‘유령’을 썼다. 극단 산울림은 입센 서거 100주년을 맞아 파국 직전의 19세기말 유럽 사회를 빗대 어떤 사회의 기괴한 풍경화, ‘유령’을 공연한다.
“그래, 의사가 뭐라든?” 온 몸에 기운이 빠지고, 어지럽고 메스꺼워 병원에 갔다는 오스왈드의 말에 알빙 부인이 다그친다. 오스왈드가 말한다. “한참 뒤에 그러더군요. 당신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감염돼 있었다고요.”
일순 긴장이 감돈다. 아무 죄 없이 성병을 뒤집어쓴 아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문란하게 살던 아버지 알빙 대위가 불행의 싹이었다.
인습, 관행, 도덕률 등 사회적 유령에 대한 노골적 폭로로 발표 당시 입센의 고국 노르웨이에서는 상연 금지됐던 작품이다. 극의 내용은 나아가 체제에 대한 위협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입센의 고국 노르웨이가 아니라, 희곡 발표 1년 뒤인 1882년에야 미국 시카고에서 초연된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
성병과 간통, 자유 연애, 근친상간, 안락사 등의 주제는 이 작품이 1881년 발표작임에도 오늘의 한국인들에게 긴장의 끈을 죄게 한다.
더구나 입센이라 하면 ‘인형의 집’(1978)이나 ‘페르귄트’(1867)가 전부인 듯 알려져 있는 이 곳에서 파격적 주제를 담은 ‘유령’의 상연은 연극사적 의미도 크다.
부르주아 사회에 가득찬 위선을 고발하는 이 작품에서 객석의 공분을 살 인물은 만데르스 목사다. 알빙 부인이 부르짖는다.
“낡은 관습과 편견, 기억도 나지 않는 추악한 죄…(중략)…온 나라 안에 유령이 가득 살고 있을 거예요.”
목사는 “그 끔찍하고 해악을 끼치는 자유 사상을 전파하는 책들이란…”하며 맞장구를 친다. 그러나 목사는 기득권자들에 편승해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는 위선적 인간이다.
의뭉수의 목사를 연기할 중견 배우 전무송(66)씨의 변신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2004년, 10년만에 산울림 극장에 복귀해 ‘카페 신파’에서 호연을 한 전씨로서도 이번 무대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TV나 영화 등에서의 외도를 접고 고향인 연극판으로 돌아와, 지난해 ‘상당한 가족’에 이어 딸 현아(34)씨와 함께 꾸미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는 “딸과 한 무대에 서는 게 세번째지만, 제대로 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더 신경쓰인다”며 “ 흥행을 떠나, 산울림의 입센 서거 100주년 기념 무대에 참가해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또 여성성의 의미를 돌이켜 보게 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이 만개한 한국 사회에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법하다.
입센의 대표작 ‘인형의 집’에서 여주인공(노라)이 인습적 의무와 관습의 사슬을 끊었다면, 알빙 부인은 그 속박을 끊지 못 한 채 가정에 결박된 여인에게 닥치는 비극을 그려 보인다.
입센 서거 100주기를 기념, 4월25일 열린 세미나 ‘근대 연극의 별 헨릭 입센’의 뒤를 잇는 것이기도 한 이 무대는 우리 사회에 만개한 성 담론을 돌아 보게 한다는 의미도 갖는다.
국립극단의 이혜경을 비롯, 이영석 안성현 등 출연. 5월9~7월2일까지 산울림소극장. 연출 임영웅. 화~목 오후 7시30분, 금ㆍ토 오후 3시 7시30분, 오후 3시. (02)334-5915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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