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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미술가 바이런 킴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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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미술가 바이런 킴 개인전

입력
2006.05.0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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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뉴욕 휘트니 비엔날레를 통해 혜성처럼 떠오른 재미 동포 미술가 바이런 킴(45). 당시 그는 다양한 인종의 피부색을 수 백 개의 작은 패널에 옮긴 ‘제유법’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색상 조각 수 백 장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한 것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패널 하나하나가 각 피부색의 주인들을 드러내는 강력한 존재 증명이라는 점에서, 극히 추상적인 형식이 거꾸로 가장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표현이 될 수 있음을 보였다. 이로써 그는 추상은 내용이 없는 형식이라고, 혹은 그래야만 한다고 믿어온 현대 미술의 통념을 무너뜨렸다.

지난해 봄 서울 로댕 갤러리가 그의 첫 한국 개인전을 열면서 ‘접점’(Threshold)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추상과 구상의 완고한 이분법을 넘어서는 경계 혹은 접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적절해 보인다. ‘제유법’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주변 인물, 고려 청자, 풍경 등을 모노크롬의 추상으로 완성한 작품들을 보면서, 관객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했다가 곧 추상으로부터 구체적 이야기를 발견하는 역설을 즐겁게 누릴 수 있었다.

바이런 킴의 두 번째 한국 개인전이 pkm갤러리(서울 종로구 화동)에서 27일 개막됐다. 일요일마다 직접 하늘을 보며 그려 나간 ‘일요일 그림’ 근작과, 새롭게 시도한 사진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작품은 모두 ‘내가 보는 것’(What I See)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작업실이 있는 건물 옥상에서, 살고 있는 집의 실내나 정원에서, 가족끼리 소풍 간 공원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수십 장의 사진을 퍼즐 짜맞추듯 조각 조각 이어 붙여 대형 화면에 파노라마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그는 사진을 배운 적이 없고, 사용한 카메라도 요즘 국내에서 흔한 500만~600만 화소급이 아니라 100만 화소 짜리다. 제목 그대로 자신이 본 것을 찍은 이 작품들은 극히 일상적인 장면을 담고 있고, 색 보정 같은 인위적 작업을 전혀 하지 않았다. 별다른 기교나 과장 없이 자신이 본 것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이런 작업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별 것 아닌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지점에 선 채 20~30분씩 몸을 돌려가며 찍은 사진들이 모여서 이룬 전체는 2차원 평면에 시간과 공간의 여러 차원을 한꺼번에 표현하는 마술을 연출하고 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에 대해, ‘지금 여기’ 혹은 ‘그때 거기’ 식으로 1 대 1 대응의 경험만을 제공하던 방식을 겨눈 상쾌한 급습이다. 자세히 살피면 사진 속에 작가의 발이나 그림자가 보인다. ‘내가 그 때 거기 있었다’고 말하는 듯한 작가 특유의 이 부드러운 유머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일요일 그림’ 시리즈는 가로 세로 각 35.5cm의 작은 패널에 캔버스를 씌우고 아크릴과 과슈로 하늘을 그린 것이다. 매번 달라지는 하늘의 색깔과 모양을 그리고 그날의 단상을 그림 위에 간단하게 써 놓았다. 하늘 관찰 일기 같은 이 그림들은, 일상적 삶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초월적인 세계로 향하는 시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바이런 킴은 시인이 되고 싶었던 영문학도 출신이다.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진지함과 정직함, 시적인 서정과 유머는 그런 이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전시는 5월 27일까지. (02)734-9467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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