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汎) 현대가가 시련의 계절을 맞고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의 차남인 정몽구 현대ㆍ기아차그룹 회장은 영어의 몸이 될 처지에 놓였고, 정 명예회장의 조카인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불구속 기소를 당했다.
정 명예회장의 다섯째 며느리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시동생(정몽준 의원)과 경영권을 놓고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상황이다. 3년전 시숙(정상영 KCC명예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인데 이어 이번에는 시동생과 또 한차례 다툼을 벌이게 된 것이다. 정 전 명예회장의 3남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도 비상장 계열사인 한무쇼핑의 세무조사로 좌불안석이다.
범현대가 사람들 중 가장 혹독한 봄을 맞고 있는 이는 정몽구 회장이다. 2000년 왕자의 난으로 현대그룹 적통을 이어받지 못한 채 분가한 정 회장은 이후 절치부심하며 경영에만 전념, 단기간에 현대차그룹을 재계 2위로 올려 놓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무리한 몸집 불리기는 탈법을 불렀고 그는 결국 28일 서울중앙법원에서 비자금 조성문제 등으로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
정몽규 회장은 구속은 안 됐지만 인간적인 배신감은 더 큰 케이스다. 검찰에 따르면 정 회장은 회사 소유의 고려산업개발 신주인수권을 매각하고 받은 50여억원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검찰 조사과정에서 정 회장은 자신의 비자금 관리를 맡았던 친구 서모씨가 30여억원을 빼돌려 해외로 도피한 것을 확인한 후 크게 낙담했다는 후문이다.
현 회장도 요즘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인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그룹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 주식 26.68%를 매입, 최대 주주로 올라선 것. 업계에선 현대중공업그룹과 KCC그룹이 서로 우호적인 관계라는 점을 들어 2003년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자살 이후 벌어졌던 현 회장과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경영권 다툼이 제2라운드로 돌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에선 현대가가 무척 어려운 시기에 현대중공업이 무리하게 현대그룹을 적대적 인수합병(M&A)하려는 것에 대해 가족간 자중지란을 가져올 수 있다며 곱지 않은 시각을 보내고 있다.
이처럼 유독 범현대가가 ‘봄날의 악몽’을 겪고 있는 것은 가족수가 많아 계열분리 과정에서 진통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란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정 전 명예회장은 5남2녀중 장남이었고 스스로 8남1녀를 뒀다. 현대그룹은 1998년 현대해상을 시작으로 99년 현대백화점, 2000년 현대차그룹, 2002년 현대중공업이 각각 분가했다.
A그룹 관계자는 “범현대가의 사건들은 대부분 비자금과 연관돼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며 “이는 건설업에서 출발, 로비를 통해서 성장한 그룹의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현대가안에서도 투명 경영으 ㄹ통해 재계의 리더가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총수 1인 지배 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해 이 같은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자성론이 일고 있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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