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자료를 집계 분석하는 회사인 미국의 베리스팬(Verispan)이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처방된 약품 중 20위권 안에 정신과 약물이 7개나 들어있고, 이중 두 개의 항우울제가 10위권 안에 들어있습니다. 우울증약이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팔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올 봄 진료실을 찾는 우울증 환자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유난히 많습니다. 평생 대여섯 명중에 한명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의 우울증에 걸린다고 하는데, 아마 이 숫자는 더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때문에 항우울제 처방이 늘어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근래 새롭고 다양한 약들이 많이 발매되어 약물 치료의 폭과 유연성이 커졌기 때문에 항우울제 치료를 더 적극적으로 적용하게 되는 까닭도 있습니다. 물론 신약을 개발한 제약회사들은 자사의 항우울제가 효과가 좋고 과거의 약물에 비해 부작용이 크게 줄었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약을 처음 복용하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항우울제에 대한 부담과 걱정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K씨는 우울증 진단을 받고 항우울제를 처방 받았습니다. 그런데 첫날 약을 복용한 후 어지럽고, 팔다리에 이상한 느낌이 오며, 다음날 낮에까지 잠이 오는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처음 수일간은 이런 증상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을 듣고 안내문까지 받아왔지만, 그래도 뭔가 잘못되었다 싶어 약물 복용을 중단했습니다.
L씨 역시 우울하고 불안한 증상으로 처방 받은 항우울제를 보름 정도 복용했습니다. 그 동안 증상이 좋아지지 않고 잠도 오지 않아 처방된 것보다 더 많은 양을 복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머리가 아프고, 멍해지는 것 같으며 공연히 구역질이 나와, 치료 효과는 없고 부작용만 있다고 판단해서 약물 복용을 중단했습니다.
M씨는 다행히 특별한 부작용 없이 항우울제 치료를 시작했고, 빠른 속도로 증상이 호전되었습니다. 약물 치료를 시작한 지 두 달쯤 되자 거의 정상 상태로 되돌아왔다고 판단됐으며, 약물 중독이 걱정되어 임의로 복용을 중단했고, 그로부터 약 한달 뒤 증상이 재발하여 다시 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모두 우울증 치료 초반에 환자분들이 항우울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와 의사들의 불충분한 설명으로 인해 효과적인 치료에 지장이 초래되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우울증의 약물 치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잘 알아두어야 합니다.
우울 증상에 대한 치료 효과는 항우울제 복용을 시작한 지 3~4주가 지나야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더디게 회복되는 뇌신경계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경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치료 초기에는 약은 안 듣고 부작용만 나타난다는 오해를 할 수 있으나, 인내를 갖고 복용 하다보면 증상이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울증 때문에 걱정이 많고 어려움을 견디는 힘이 약해져 있기 때문에 특히 치료 초기에는 가족이나 친구들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합니다.
항우울제는 의존성이 없습니다. 즉 장기간 복용할 때 중독 현상으로 인해 평생 약을 끊지 못하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울증 치료에 보조적으로 사용하는 항불안제의 경우 약간의 중독성이 있으나, 이것도 치료적인 처방에 있어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 정도입니다.
항우울제 치료 초기에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각한 부작용은 거의 없으며 대개 수일 또는 수주의 기간이 지나면 부작용이 현저히 줄어들어 장기간 복용하는데 큰 불편이 없게 됩니다.
항우울제 치료는 급성기와 연장기, 그리고 유지기 치료까지 완료해야 합니다. 이 기간이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약을 빨리 끊을수록 재발의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울증이 한번 생기면 상당수에서 계절을 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우울증이 발생한 계절이 몇 차례 무사히 지나갈 때까지는 약을 복용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입니다.
우울증은 치료가 잘되는 병에 속합니다.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주치의와 잘 협력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성균과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 운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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