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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윤이상과 處染常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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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윤이상과 處染常淨

입력
2006.04.29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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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연꽃은 매우 존귀한 존재다. 부처가‘말을 하지 않고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여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그 유명한‘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와 함께 들어보인 것이 연꽃이다. 불화(佛畵)를 보면, 보살 사천왕 등은 사자 코끼리 등 동물이나 악귀를 타고 있지만 부처는 연꽃 위에 앉아 있다.‘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과 같은 경전의 이름에도, 부처님 오신 날의 밤을 밝힐 등에도 연꽃은 극락과 자비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형상화해 있다.

연꽃은 불교 정신과 유사한 특성을 갖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으뜸이 되는 덕성이‘처염상정’(處染常淨), 즉‘더러운 물에서 피어나지만 결코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불가의 수행자들은 이를‘흙탕물에 뿌리를 내리고 오염물질을 몸에 흡수해 양분으로 삼아, 산소를 만들고 꽃까지 피우는 연(蓮)처럼 번뇌와 애욕으로 가득찬 세상에 물들지 않고 오염된 세상을 맑게 하라’는 가르침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인다.

동서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그곳에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95)이 잠들어 있다.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석방된 뒤 단 한번도 고향 땅을 밟지 못한 그. 윤이상의 묘비에는‘디아스포라’(diaspora)로 산 그의 30년 삶의 궤적을 응축한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處染常淨’.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독특한 음악세계로 거장 반열에 오른 윤이상은 자신의 음악이 일제의 압제를 거쳐 분단에까지 이른 조국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기를 갈구한 인물이다. 민중은 핍박받고 조국은 분단돼 있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은 그의 평생의 슬픔이요,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밤이여 나뉘어라’’광주여 영원히’등을 통해 윤이상은 독재 권력의 야만에 대한 분노, 민주화에 대한 염원을 분출하기도 했다. 북쪽이 남쪽보다 그를 먼저 품에 안은 것은 그런 윤이상의 정치성을 활용하려는 의도에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거장의 위대함은 그가 이데올로기나 정치 현실에 머물지 않았다는데 있다. 그에게 있어 북은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되게 해주어야 할 반쪽의 조국이었을 뿐이다. 북은 평양에‘윤이상 음악당’을 짓는 등 지원을 했지만 그는 민족이 하나가 되고, 그 하나된 민족의 가슴에 영원히 새겨질 음악을 만드는데 열중했다. 무엇보다 윤이상은 자신에게 가해진 고통과 핍박, 디아스포라와 경계인으로서의 고독과 슬픔을 민족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담긴 음악으로 승화시켜 희망을 전하려 했다.

그의 삶이 그렇게‘처염상정’에 닿아있음은, 부인 이수자씨가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한, 윤이상의 언급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작곡가는 예술가이며 동시에 세계 속의 한 인간이다. 그는 결코 그 세계를 무시할 수 없다. 세계 속에는 인간적인 고통과 억압, 고난과 부당함이 존재한다. 그 모든 것이 내 생각 속에 들어온다. 고통과 부당함이 있는 곳에 나는 음악을 통해 더불어 얘기하고자 한다.”

내일 남북이 함께 윤이상을 기리는 음악회를 금강산에서 연다. 윤이상이 생전에 제안한‘휴전선 민족합동 음악축전’은 아니지만, 남북이 함께 윤이상의 곡을 연주하고 부르는 자리라는데 의미가 크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윤이상을 생각하며 ‘처염상정’의 삶을 생각해보는 한 주가 되어봄직하다.

황상진 문화부장직대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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