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경제적 파장을 우려하는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그룹 회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함으로써 재벌 총수를 비롯한 화이트칼라 범죄를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검찰은 ‘재벌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가장 최근의 예로는 지난해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 때 총수 일가를 전원 불구속 기소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삼성에버랜드 CB(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은 2003년 12월 1일 공소시효 완성 하루 전에 실무 임원들만 기소했고,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 때도 전문 경영인만 처벌하고 재벌 총수에게는 면죄부를 줬다. 크게 보아 경제적 파장을 우려하는 현실론에 더 무게를 둔 탓이었다.
이러한 검찰이 27일 현대차 사건 처리입장을 밝히면서 종전보다 한층 더 선명하게 ‘사법정의’를 강조했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글로벌 대기업인 현대차 그룹의 대외 신인도 문제와 환율하락, 유가급등 등 국가경제적 상황을 고려했다”면서 “그러나 2만 달러 시대의 선진한국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신뢰성 확보가 절체절명의 시대적 과제라는 점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때만 되면 읊어온 재벌의 ‘경제위기론’을 검찰이 앞으론 호락호락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올해 초 이용훈 대법원장이 기업 범죄에 낮은 형량을 선고하는 법원의 관행을 질타한 데 이어 천정배 법무장관도 화이트칼라 범죄를 엄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시대적 과제’라는 표현까지 구사한 것은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현대차가 재계 2위의 글로벌 기업이라는 사실을 유난히 강조했지만 결국 ‘총수 구하기’에 실패한 점에 비춰보면 앞으로 어느 재벌도 검찰의 이런 원칙을 쉽게 돌려놓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채 기획관도 “기업 관련 비리에 대해 검찰은 앞으로도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이 같은 기류 변화는 당장 검찰 수사가 진행중인 삼성과 신세계 등 다른 재벌사건 처리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삼성그룹 총수 일가의 공모 여부로 수사가 확대된 에버랜드 사건이나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의 광주신세계 주식 저가 인수 의혹은 모두 현대차의 편법 경영권 승계와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두산그룹 총수 일가도 최근 달라진 검찰과 법원의 기류에 바짝 신경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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