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배우도, 잘 나가는 감독도 아니지만 그는 국내 영화ㆍ비디오 마니아 사이에서는 손꼽히는 주요 인물의 한 사람이다. 작품 선정은 물론 번역, 더빙, 판매 등의 전 과정을 직접 맡아 하지만 돈벌이가 목적은 아니다. “그저 내용이 좋아서 이를 널리 알리는 게 목적일 뿐”이라고 말한다.
임 세바스찬(71) 신부. 경북 왜관의 베네딕도 수도원 소속 신부인 그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잉마르 베리만 감독 등의 이른바 예술영화로 알려진 수작들을 국내에 알린 영화 전도사이기도 하다.
따뜻한 내용의 어린이 영화를 알리는데도 적극적인 그가 올해 어린이날을 앞두고 또 한 편의 DVD를 들고 찾아왔다. 독일의 유명 아동문학가 에리히 케스트너 원작의 ‘하늘을 나는 교실’이다. 기숙사 아이들과, 그들을 지도하는 사감 선생님이 펼치는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다.
장난 심한 말썽꾸러기 아이들이지만, 선생님은 녀석들이 어떤 행동을 해도 다 받아주고 포근히 품어준다. 겁쟁이라는 놀림을 받은 울리가 건물에서 풍선을 타고 내려오다 다리가 부러져도 “평생 겁쟁이로 사느니 다리 한 번 부러지는 게 낫다”며 격려하는 선생님이다.
기숙사 밖 아이들과 패싸움이 붙었을 때도 꾸짖거나 화내지 않는다. 대신 기숙사 안과 밖 아이들이 연극을 함께 만들고 노래를 함께 부르도록 이끈다. 아이들은 ‘정의파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그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른다.
임 세바스찬 신부는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서로 신뢰해야 좋은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작품 역시 그가 직접 고르고 번역했다. ‘하얀 꼬마 곰 라스’ ‘레오 리오니의 동물 우화’ ‘핑크트헨과 안톤’ 등 이전에 낸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그가 고른 영화들에서는 요즘 우리 아이들이 어디서나 접하게 되는 폭력적, 자극적 장면 대신 웃음과 감동이 넘친다.
그는 독일 뉘른베르크 출신이다. 1966년 선교를 위해 우리나라에 왔으니 벌써 40년이다. 젊어서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한국에 와서는 어린이 영상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국에는 어린이용 비디오가 적고, 내용도 미국 일본에서 만든 폭력적인 것이 많다는 내용의 신문기사를 읽고서였다. 그는 잘 찾아보면 좋은 작품이 얼마든지 있을 텐데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판단했다. 독일, 영국 등의 친구와 영화계 종사자들을 통해 직접 작품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작품을 고른 후 번역을 거쳐 녹음할 때도 몇 시간 동안 스튜디오에서 성우들과 함께 한다. 제작한 작품은 성당에서 직접 판매도 하지만 임 세바스찬 신부는 작품을 들고 일일이 언론사 등을 찾아다니며 직접 홍보에도 나선다.
“아이들이 좋은 영화 한 편 보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우정과 신뢰, 용기, 기쁨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지요.” 더부룩한 수염에 늘 쓰고 다니는 모자가 인상적인, 인자한 이웃 할아버지 같은 임 세바스찬 신부의 영화 예찬, 어린이 예찬이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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