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신문에 실린 ‘장애인의 날’ 특집기사들을 읽으며 가장 마음 아팠던 기사는 한국일보의 청각장애인에 관한 시리즈였다. 그 기사는 우리를 놀라게 했다.
농아학교 교사들이 대부분 수화(手話)를 잘 못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농아학교의 교육에 실망한 많은 농아들이 차라리 일반학교에 다니고 있다니 그들은 또 일반학교에서 어떻게 공부하고 있을까.
농아학교, 맹아학교 등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특수학교’로 묶어 특수교육 자격증 소지자를 순환 배치하고 있는 교육부의 생각은 도대체 무엇일까. 농아를 가르치던 교사를 맹아학교로 보내고, 맹아를 가르치던 교사를 농아학교로 보내면서 교육부는 과연 어떤 ‘특수교육’을 기대하고 있을까.
수화 못하는 농아학교 교사 충격
여야는 지난 총선에서 장애인을 비례대표 1번으로 공천하는 등 장애인 문제에 대한 관심을 과시했고, 정부도 장애인 복지와 정책 개발을 우선순위에 놓고 있다. 공공장소와 건물들은 의무적으로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이런 노력을 통해서 ‘함께 사는 사회’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농아학교의 현실은 ‘함께 사는 사회’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농아들의 배울 권리 자체를 무시하는 그 교육현장은 우리나라의 장애인 정책이 전시효과에 치우치고 있지 않은지, 관련자들이 과연 정성을 다해 접근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청각 장애인들의 언어는 수화다. 농아들을 가르치고 농아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수화를 잘해야 한다. 수화는 몇 종류의 손놀림으로 기초적인 의사를 주고받는 수신호가 아니라 섬세한 부분까지 표현할 수 있는 언어다. 교사의 수화능력이 수신호 수준이면 학생들도 수신호 이상의 언어를 배우지 못한다.
청각장애인들이 우리말을 쓰고 읽을 수 있다 해도 수화를 통해 그 뜻을 배우지 못하면 외국어에 불과하다. 글자를 알 뿐 글의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농아교육을 하려면 우선 수화를 잘하는 교사들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전국 18개 농아학교의 교사 1,000여 명중 수화에 능숙한 교사는 50여명, 한 학교에 2~3명 정도라고 한다. 농아교육이 얼마나 허술하게 진행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교사와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 대다수는 배움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10년을 학교에 다녀도 우리 말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
장애인이 일반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 피나는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일반 교사들에 비해 더 사명감이 높고 유능한 교사들이 열과 성을 다해 매달려야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배움의 시기를 놓치는 농아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안타깝다.
정부가 장애아들의 교육에 특별히 신경 쓰지 않으면 결국 국가가 몇 배나 불어난 부담을 져야 한다. 부실한 교육은 가난으로 이어지고 농아들은 장애와 가난이라는 이중의 짐을 지고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교육부 관계자는 한국일보 기자에게 “농아학교만 분리해 수화가 가능한 교사를 채용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어려운 일이며 제도개선과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의 전형적인 변명이다. 그렇다면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농아학교의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또 유시민 복지부 장관은 어떤 생각일까. 장관들도 제도와 예산 타령을 할까.
교육·복지 장관은 무엇을 하나
장애의 특성을 무시한 채 배움을 강요하는 것은 잔인한 교육이다. 농아학교에서 맹아학교로, 맹아학교에서 다시 농아학교로 교사를 발령하면서 그것을 ‘순환 배치’라고 우기는 것은 양식을 가진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또 수화를 잘 못하는 교사가 농아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교사의 양심에 어긋난다.
수화통역사는 사회 곳곳에서 필요하다. 법원 경찰 병원 등에서 청각장애인들의 의사소통을 도와 줄 수화통역사들이 필요하다. 장애인 정책을 기초에서부터 차근차근 되새겨 볼 때가 왔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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