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을지로3가 쁘렝땅 백화점 지하에 있는 양복점 ‘반니’. 구식 맞춤 양복점에 어울리지 않게 20~30대 젊은이들이 북적거렸다. 세련된 인테리어로 꾸며지지도, 깔끔한 정장을 차려 입은 젊은 점원이 고객을 맞지도 않는다. 까다로운 젊은이들이 굳이 아버지뻘 되는 아저씨들에게 양복을 맞추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50대로 보이는 재단사 4명은 각자 매장에 들어오는 젊은 고객들의 취향을 집어내기 바쁘다. 이 가운데 의외로 제일 젊은 이석호(48)씨가 대표란다.
“18살 때 서울에 올라와 공장에서 심부름부터 시작한 지 올해로 꼭 30년째네요. 양복 만드는 작업장에서 일을 배워 맞춤양복쟁이가 됐어요. 맞춤양복 1세대 중 막내지요. 우리 같은 과정을 거친 후배는 더 이상 없으니까.”
맞춤양복의 메카로 불리던 서울 광교 주변에 네 집 걸러 한 집이 맞춤 양복점이었던 때가 있었다. 1970년대다. 서울에서 양복점을 하던 옆집 형이 멋져보여 그는 고등학교 때 양복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다. 형의 소개로 서울 명동에 있는 ‘작업장’에 들어갔다.
숙식이 제공되는 이곳은 초보자들이 들어가 양복의 기술을 익히는 대형 양복 공장. 이 바닥에선 ‘실 사오라면 실 사오고, 가위 사오라면 가위 사오는 심부름 꼬마 노릇을 꼬박 2년간 해야 한다. 가끔 불규칙적으로 주는 용돈이 고작이었지만 ‘서울 양복집 사장’ 이라는 꿈을 가진 그는 열심히 일했다.
“어휴, 그때는 그렇게 해야 했어요. 그 길 말고는 없는 줄 알았으니까. 가끔은 선배들 연애편지 배달해주는 일까지도 해야 했어요. 하하.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시중을 들면서 간단히 수선하는 일을 1년간 더 하고 나면 바지 만들 기회가 주어진다. 그땐 하루에 3시간 이상을 못 잤다. 만드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저 근무시간에 어깨너머로 보고 밤에 혼자남아 만들어보기를 반복했다. 바지 만드는 데 3년, 상의 만드는 데 2년을 투자하니 그럴싸한 옷이 만들어졌다.
신기하고 재미도 있었다. 옷 모양이 나오자 ‘재단 파트 보조(일본어가 통용되던 당시에는 시다)’로 승진했다. 요샛말로 양복점 매니저다. 사이즈도 직접 재고 패턴도 뜨고 원단도 자르고 전체적인 디자인도 맡았다. 이것만 5년을 혹독하게 하고 나니 ‘양복쟁이’라고 조금씩 인정 받았다.
작업장에서 일한 지 12년 만인 88년 드디어 ‘한불 양복점’ 사장이 됐다. 바로 지금의 ‘반니’다. 당시에는 10평 남짓한 작은 규모였지만 감격스러웠다. 한창 좋은 경기 덕에 한동안은 그럭저럭 꾸려졌다. 손님이 줄때는 선배들의 소개로 중국에 가서 고객을 유치하기도 했다.
한때 어렵게 같이 기술을 배운 선배들이 기성복에 밀려 하나, 둘 가게 문을 닫을 때 마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 대표는 2000년부터 ‘나만의 것’을 선호하는 젊은이를 주고객으로 끌어들이기에 열을 올렸다. 고심 끝에 인터넷을 배우고 젊은이들이 잘 쓰는 말도 익혀뒀다.
연예인이 입고 나오는 양복을 보려고 잡지나 드라마도 열심히 보고 백화점 명품매장도 돌아다녔다. 지난해 8월에는 웹사이트도 개설했다. 단골 고객의 도움으로 올 2월에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118년의 전통을 맞춤 양복점 ‘반니’와 기술 제휴도 맺었고 상호도 바꿨다.
“겉 모습도 그렇고 아버지가 가던 맞춤 양복점이니 촌스러울 것 같고 싫잖아요. 근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요, 한번 해보고 좋으면 바로 인터넷 홍보꾼으로 나서더군요. 이렇게 인터넷과 입소문으로 찾아오기 시작한 20~30대 젊은이들이 지금 전체 고객의 70%이상입니다.”
그는 여전히 실력있는 선배들을 직원으로 두고 있다. 기술로 치면 선배들이 뛰어나고 그 기술을 아는 사람만이 좋은 양복을 만들 수 있다는 철학 때문이다. 이곳은 18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문을 열었다.
빌딩 전체가 문을 닫아도 쪽문을 열어놓고 일요일에도 고객을 맞는 다. 아는 사람들은 일요일에만 온다. 젊은이들의 주머니 사정에 맞춰 가격도 대폭 낮췄다. 그래서 예전만큼 수입이 많지는 않다. 그래도 옷을 만들 수 있다는 즐거움 때문에 망설임 없이 낮출 수 있었다.
“요즘 젊은 친구들 덕에 많이 배웁니다. 원하는 날짜에, 원하는 디자인으로, 약속한 대로 정확히 맞춰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본인이 원하는 사이즈와 스타일 때문에 맞춤집을 찾는 거니까요. 아직도 부족하지만 처음 같은 기분으로 꾸준히 공부해 나갈 생각입니다.”
그게 바로 젊은이들이 반니를 찾아가는 이유인 듯 싶었다. ‘옷이 참 마음에 든다’고 웹사이트에 글 한 줄 올라갈 때마다 진한 감동을 느낀다는 이석호씨. 그는 오늘도 줄자를 둘러매고 친구소개로 찾아 왔다는 한 젊은이의 신체 사이즈를 이리저리 재느라 바빴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의 의미를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조윤정기자 yj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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