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의 봉암사를 들어보셨는지요. 1년에 딱 한 번 석가탄신일에만 산문을 연다는 꿈속의 절집, 비밀의 사찰입니다. 조계종 산하 2,800개의 절 중에서 유일하게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 청정도량입니다. 신라 헌강왕 5년(879년) 지증국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봉암사는 백두대간의 단전에 해당한다는 거대한 바위산인 희양산 자락에 그 터를 잡고 있습니다.
봉암사는 현대불교가 지금의 틀을 갖추게 된 시발점이기도 합니다. 해방전후 일제하에 만신창이가 된 한국 불교의 자체 정화를 위해 1947년 중견 스님들이 모여 오직 부처의 법대로 한번 살아보자고 결사를 단행한 곳입니다.
그때 모였던 분들이 청담, 성철, 서암, 월산, 자운 스님 등이었습니다. 그리고 82년부터 서암스님의 주도로 옛 구산선문의 참선도량의 전통을 부활해 오직 스님들이 정진할 수 있도록 일반인의 출입을 금했고 지금껏 그 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전국의 딱 하나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는 도량을 만들기 위해 수행자들이 지팡이 곡괭이를 들고 죽기살기로 산문을 막고 지켜온 결과입니다.
한번은 가보고 싶어 몇 년을 별렀던 곳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문경시청의 도움으로 봉암사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비밀의 수도원에 발을 디뎠습니다.
예전 큰 탄광이 있었던 가은읍을 지나 봉암사 진입로로 꺾어 들어가니 거대한 암봉이 떡하니 마중나왔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북한산 백운대 인수봉과 진안 마이산을 합쳐놓은 것처럼 불쑥 솟은 봉우리’라고 표현한 희양산이다. 산세가 뿜어내는 양기는 보는 이의 주눅을 들게 한다.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관리사무소를 지나 굽이진 호젓한 길을 걸어 도착한 경내. 1,000년의 역사를 품었고, 25년을 꼭꼭 숨겨왔던 절이니 만큼 시간의 더께 수북한 고풍스러움이 물씬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절은 의외로 현대적이었고 세련된 모습이다.
전략적 요충지였던 문경새재가 코앞인 까닭에 봉암사는 전란의 불길을 피할 수 없었다. 불타고 다시 짓고, 불타고 다시 짓고. 건물 대부분이 오래되지 않은 이유다. 또 수행자 우선으로 수행하기 좋게 지어진 탓에 건물의 선들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비온 다음날이라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푸르고 꽃들도 만발했지만 경내는 언제나 그랬듯이 숙연함으로 무거웠다. 처마 끝을 스친 바람에서도 저절로 옷매무새를 가다듬게 하는 진중함이 뚝뚝 묻어났다.
행여 참선하는 수행자들에게 방해가 될까 사뿐사뿐 발을 옮기며 사찰을 둘러봤다. 지증대사비와 지증대사부도, 대웅전 앞의 삼층석탑 등이 신라때부터 지금껏 이 사찰을 지켜온 보물들이다. 지증대사비의 비문은 최치원이 지었다고 한다. 부도에 새겨진 정교한 보살상에서 화강암을 떡 주무르듯 했던 당시의 석조 기술을 엿볼 수 있다.
주지 함현 스님께서 크게 인심을 쓰신 덕분에 사찰 뒤편 백운대까지 가볼 수 있었다. 사월초파일에도 일반에 개방되는 곳은 봉암사 경내일뿐 백운대는 들어가볼 수 없는 곳이다. 콸콸 쏟아지는 계곡물을 따라 산길이 이어졌다.
진달래꽃이 바닥을 수놓은 호젓한 산길을 한 10분 가량 오르니 사방이 트이면서 널따란 암반이 나타났다. 봉암사를 감싼 백두대간이 고아낸 맑은 물줄기가 암반 위에서 부챗살 모양으로 폭포를 이뤄 힘차게 떨어진다. 암반 위 집채만한 바위에 마애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천하 절경을 홀로 지키고 선 백운대의 주인이다.
문경에는 봉암사 보다도 먼저 지어진 천년고찰이 2곳 있다. 산북면의 대승사와 김용사가 그곳으로 신라 진평왕 9년(587년)과 10년에 나란히 지어졌다. 두 곳 다 경내의 건물들은 그리 빼어나지 않지만 절이 자리한 터와 사찰로 들어가는 절길이 엄숙하리만큼 곱다.
문경=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문경/ 도예의 고장
문경은 도자기의 고장이다. 하늘재, 문경새재 등 길이 발달된 문경은 한양과 영남을 잇는 길목으로 예부터 도예가 발달해왔다. 질 좋은 흙과 땔감, 판로까지 3박자를 갖춘 곳으로 경기 이천 광주가 관요(官窯)라면 문경은 민요(民窯)의 본고장이다.
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 김정옥 선생과 명장 천한봉, 이학천 선생 등이 터를 잡고, 그들을 따르는 많은 후계자들이 지금도 예술혼을 불사르고 있는 곳. 문경 도예는 옛방식대로 이뤄진다. 손쉬운 가스가마 대신 장작으로 불지피는 망댕이가마를 고집한다.
문경의 도예인들이 뭉쳐 29일부터 5월7일까지 ‘혼을 굽는 장인과의 만남’이란 주제로 ‘2006 문경 한국 전통 찻사발 축제’를 문경도자기전시관 일원에서 연다. 최근 문경읍 용연리에서 발견된 500년 된 백자공방을 이전 복원하고, 세계의 도자기 가마 모형 전시, 사진으로 보는 문경의 도자 100년사 등 다양한 전시행사가 진행된다.
한국과 중국 일본 미국 캐나다 등 세계의 찻사발을 한데 모아 비교하는 전시회도 열고 전국 도예명장 특별전, 찻사발 공모대전, 전통망댕이가마 불지피기 등도 준비됐다. 문경시청 문화관광과 (054)550-6394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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