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ㆍ기아자동차 그룹 회장에게 있어서 28일은 '생애 가장 긴 하루'였을 듯 하다.
정 회장은 평소대로 이날 새벽 기상해 가족들과 인사를 나눈 뒤 오전 7시께 그룹 본사로 출근했다.
그러나 전날 밤 늦게까지 변호인단과 영장실질심사 대책을 숙의했던 탓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 듯 눈이 상당히 충혈돼 보였다.
측근들은 "정 회장이 전날 뿐 아니라 최근 들어 불면증에 시달려왔던 탓에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처럼 비쳐졌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피곤함과 초조함을 감추고 당분간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임원 회의를 진행했고, '만일의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주문했다.
그는 이어 오전 9시께 구인장을 들고 찾아온 검찰 직원들을 만났고, 자신의 승용차가 아닌 공무용 준중형 아반떼 승용차편으로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으로 향했다.
격전이 시작된 것은 오전 10시. 영장실질심사가 시작되자 검찰은 정 회장 구속의 당위성을 주장했고 변호인단은 구속의 부당성을 외치며 격렬한 법리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정 회장은 양측의 다툼을 지켜보면서 필요할 경우 자신의 의사를 피력했다.
68세의 고령에다 고혈압 등으로 인해 두 시간을 버티기가 쉽지 않았지만 주치의를 법정에 대기시킨 채 비교적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했다.
검찰의 추궁에 대해서는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한다"는 대답을 많이 내놓았다.
변호사의 의견에는 동조하면서 자신의 공백으로 인해 그룹이 입는 타격을 법원에 호소하기도 했다.
한 차례의 휴정을 거쳐 오후 3시30분 실질심사가 종료된 뒤에야 정 회장은 자신이 조사를 받던 대검 조사실로 자리를 옮겨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쳤고, 자신의 구속 여부를 기다려야 한다는 초조함은 극에 달했다.
영장실질심사가 시작된지 11시간여, 피를 말리는 시간이 지난 뒤 정 회장에게 들려온 소식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정 회장은 자신의 구속을 이끌어낸 박영수 중수부장과 차를 한 잔 마신 뒤 침울한 표정으로 청사를 나섰다.
아반떼 승용차편으로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도착한 정 회장은 1평 남짓한 독방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가장 긴 하루'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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