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부장관 시절 ‘이라크전의 설계사’로 불리면서 “이라크에서 미군은 해방자로 환영받을 것”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예측으로 웃음거리가 됐던 폴 월포위츠 세계은행(WB) 총재가 다시 본색을 드러냈다.
지난해 6월 세계은행으로 자리를 옮긴 후 한동안 신중한 모습을 보이던 월포위츠 총재가 세계은행에서도 독불장군식 정책으로 복귀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23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월포위츠 총재가 자신의 이상주의적 아이디어에 지나치게 매몰된 나머지 전문가들의 견해를 무시하면서 현실감이 결여된 정책을 강행, 이라크전 판단착오에서 비롯된 것과 같은 실패를 되풀이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포위츠 총재의 독선적 행태는 ‘부패와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집중적으로 부각됐다. 그는 최근 방글라데시, 케냐, 차드, 아르헨티나, 인도 등을 부패 국가로 지목, 세계은행의 대출을 동결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들 국가에서 대출액의 상당 부분이 부패의 먹이사슬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묵인하느니 차라리 대출을 하지 않겠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이상주의적 정책에 대해선 ‘빈곤과의 전쟁’이 기본 목적인 세계은행이 돌연 ‘부패와의 전쟁’에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효과도 불투명한 부패 퇴치를 목표로 빈곤 국가들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조치는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것이다. 비판론자들은 1990년대 인도네시아의 경우를 주요 논거로 삼는다.
당시 인도네시아도 부패가 심해 프로젝트 대출액의 20~30%가 부패로 탕진됐으나 나머지는 아주 효율적으로 집행이 됐기 때문에 다른 어느 국가보다 빨리 빈곤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후 인도네시아는 매년 100만 명 이상을 빈곤층 이상으로 끌어 올리고 있다.
전문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습관적 불신’때문에 월포위츠 총재는 부패에 대처하는 것이 이상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성격을 갖고 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부패를 관용할 수 없다는 그의 완고함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에 임하면서 ‘동지가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생각을 드러냈던 상황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워싱턴=고태성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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