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안학궁터가 고구려의 평양 천도와 함께 축조된 왕성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들이 확인됐다.
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는 26일 “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등과 8~19일 안학궁터를 조사, 고구려가 427년 평양 천도 뒤 지은 왕성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안학궁터는 장안성 천도(567년)까지 140여년간 사용한 궁성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둘레 2,488m의 네모난 성벽(높이 5m, 너비 8m)에 둘러 쌓여 있어 첫 도읍인 국내성과 넓이나 형태가 비슷하다. 일본과 일부 국내 학계에서는 고려 축성설을 주장하고 있다.
분단 뒤 처음으로 이뤄진 남북 합동 고구려 유적 발굴 조사인 이번 조사에선 성벽의 석축부가 사각추 모양의 석재를 이용, 고구려의 전형적인 성 쌓기 방식인 ‘들여쌓기’로 축조된 사실이 처음 확인했다.
이와 함께 김일성종합대학 박물관 수장고에서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안학궁터 출토 고구려 기와의 존재도 확인했다. 이 중 노끈무늬 회청색 암키와는 고구려의 평양 이전 도읍인 국내성 시기에 발견되는 5세기 유물로, 안학궁이 고구려 때 축조된 왕성임을 시사하는 또 하나의 단초로 보인다.
동명왕릉 정릉사지 등 고구려 유적에서 발견되는 연화문 막새도 확인했다. 고분 위에 궁성을 지었을 리 없다는 점에서 고려 축성설의 근거가 되 온 안학궁터 내 고구려 고분은 조성 시기가 천도 이전인 4세기 중반에서 5세기 초반으로 확인됐다.
김 이사장은 “남북한 학자들이 안학궁터가 고구려 시대 왕성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곧 남북 공동 조사 보고서를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재단은 27일부터 2일간 ‘고구려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소피텔앰배서더 호텔에서 미국 러시아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몽골 등 학자가 참여하는 국제 학술 회의를 연다.
미리 배포한 발제문에서 에드워드 슐츠 미 하와이대 교수는 “서구 학계에서는 대부분 고구려가 한국의 오랜 역사적 전통의 한 부분이라는 데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며 “고구려를 한국의 조상이 아니라고 하는 건 한국을 한국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고구려인은 ‘우리는 한국인이다. 고구려는 한국의 역사적 전통의 일부분’이라고 답했을 것이라며, 고구려의 유산은 신라 고려 조선을 형성하는데 이어졌고 아직도 한국인의 가슴에 살아있다”고 말했다.
판카지 모한 호주 시드니대 교수는 “중국은 북한 정권을 자신의 통제 하에 존속시켜 통일을 저지하고 동북공정을 통해 한국인의 민족주의 정서 와해를 기도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이 유독 고구려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것은 고구려가 20세기 한국의 국가 정체성 정립에 중심을 이뤄왔기 때문”이라며 “동북공정은 중국에 강경 신민족주의가 발호하고 있다는 신호이자 한국의 국가 정체성을 저지, 해체해 중화적 세계 질서를 부활시키려는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또 세르게이 알킨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대 교수는 “러시아 학계에선 고대와 중세 시기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의 인접 지역, 아무르강 유역, 러시아 태평양 연안 남부 지역에 (중국과는 다른) 공통된 역사 문화권이 형성됐다는 사실을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마우리치오 리오토 이탈리아 네이플즈대 교수는 “고구려가 668년 나당 연합군에 패배한 뒤 중국이 고구려를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리기로 결심한 이유는 고구려가 그만큼 중국에 위협이 되는 동아시아 전체에 그 빛을 떨칠 수 있을 정도로 위대한 국가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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