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께 쓴소리를 하는 임원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저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진 않았을 텐데….”
정몽구 현대ㆍ기아차그룹 회장이 24일 대검 청사에 출두하는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 보던 한 재계 인사는 “우리나라 임원들은 ‘고객 만족’이 아닌 ‘오너 만족’에 힘쓰다 보니 위기가 닥쳐도 이를 직보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2월초 안기부 X파일 사건과 관련해 귀국했던 이건희 삼성회장과 정 회장이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포토 라인에 서야 했던데는 다양한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편법 경영권 승계, 불법 비자금조성, 무리한 몸집 불리기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무소불위의 회장을 측근에서 보필해 온 그룹 임원들은 책임을 피하기 힘들다.
두 총수에게 불법 행위는 절대 안된다며 목숨을 걸고 직언한 경영진이 있었다면 적어도 그들의 안색이 국민들 앞에서 굳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 회장이 “조직이 비대해져 느슨해진 것을 느끼지 못했다”고 밝힌 것과 정 회장이 “이 지경이 되도록 어떻게 모를 수 있었느냐?”고 한탄한 것도 이 같은 충언(忠言)에 대한 아쉬움이었을 것이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오너에게 ‘월급쟁이’가 쓴소리를 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특히 황제처럼 군림하는 재벌총수에게 충언하는 것은 자칫 장작더미를 안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사태는 총수를 잘 모시기 위해 임원들이 진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공자도 이미 논어 자한편을 통해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박일근 산업부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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