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화계 종사자에 따르면 DVD 제작을 담당하는 사람 중에 과로로 쓰러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력 부족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홀드백’(holdbackㆍ극장 종영 후 일정 간격을 두고 비디오ㆍDVD 출시나 TV 방영을 하는 일종의 유통 질서 보호망)의 붕괴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극장 흥행과 상관없이 6개월의 홀드백을 철저히 지키는 일본과 달리, 국내에서는 극장에서 돈을 벌지 못하면 DVD 출시가 급작스레 앞당겨져 살인적 노동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홀드백의 붕괴는 투자 금액을 빨리 회수하려는 영화사의 ‘조급증’에서 비롯됐다. 여기에 ‘디빅’이라 불리는 불법 다운로드가 횡행하면서 극장 밖 ‘2차 시장’은 급속도로 와해됐다. 극장 손실을 벌충하려는 고육책과 불법 다운로드에 대한 미지근한 대응이 결국 영화계에는 수익 구조 악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18일 막을 내린 ‘왕의 남자’가 극장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약 700억원. 그러나 비디오, DVD 등 부가 판권 수익은 35억원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2차 시장 돈벌이가 극장 수익과 맞먹는 미국과 비교할 때, 1,230만 관객을 동원한 ‘일등 영화’ 치고는 초라한 성적이다.
이 밖에도 홀드백 붕괴의 부작용은 적지 않다. 케이블 TV, 위성 방송, DMB, 인터넷 등 수익원이 늘어나고 있지만 극장에 승부를 걸려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제작비보다 마케팅비가 더 드는 기현상도 벌어진다. 한 영화인은 “2차 시장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작품성보다 스타와 마케팅에 의존하는 영화가 더 늘고, 결국 충무로 전반의 경쟁력 저하를 부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거품’이 1월 미국에서 극장 개봉, TV 방영, DVD 출시를 동시에 진행하는 ‘혁명적인 시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의 홀드백은 아직 끄덕 없다. 할리우드는 3일 아예 합법적인 다운로드 서비스까지 개시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한국 영화계도 2차 시장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늦으면 늦을수록 한국 영화의 봄날은 더 짧아질지 모른다.
라제기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