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못 견디겠어!” 마흔 하고도 다섯 살이 된 여인네의 입에서 이런 말이 새나오게 하는 힘센 봄이여. 내일 당장 길을 떠나겠다는 것이다. “어디 갈 건데?” “몰라. 일어나는 대로 터미널에 가서 내키는 대로.” 멋지구나, 봄기운보다 더 세게 펄럭이는 그녀 마음의 갈피여. 그런데 그녀는 디스크를 앓고 있다.
“너, 잘 걷지도 못하잖아? 다니기 힘들 텐데.” 내 걱정에 그녀는 천연덕스레 대꾸했다. “응, 돌아다니지는 못하지. 닿는 대로 숙소 잡아 놓고 며칠 누워 있다 올 거야.” 엥?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럴 바에야 그냥 집에 누워서 다른 고장이려니 생각하지?” “그게 같은가? 낯선 곳에서 잠도 자고, 일어나서 낯선 동네를 배회하면서 밥도 사먹고 하는 게 얼마나 재밌는데.”
그녀의 여행은 혼자 숨쉴 공간을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우리 언니의 소망 하나가, 자기를 놔두고 식구들 전부 사흘쯤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언니가 여행을 가지 그래?” 내 말에 언니는, 그것도 싫고 혼자 집에 있고 싶다고 했다. 언니도 혼자만의 시간이 없어서 영혼이 외로운 주부였다. 그런데 언니는 겁이 많아서 혼자 집을 떠나지 못했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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