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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정의'는 항상 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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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정의'는 항상 善인가?

입력
2006.04.2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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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서 기업이 어렵다는 얘기도 나오던데, 시간은 누구의 편인가?”

정몽구 회장 소환을 하루 앞둔 지난 일요일. 검찰 기자가 대검 채동욱 수사기획관에게 넌지시 물었다. 정 회장의 구속 여부와 경제논리에 따른 ‘정상참작’의 여지를 가늠해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답은 굳이 가늠할 필요도 없을 만큼 선명했다. 검사는 “시간은 항상 정의의 편이다. 역사는 그렇다”고 단언했다.

‘정의’에 대한 검찰의 확고한 입장은 믿음직스럽다. 다만 그 확고한 ‘정의’도 현실 속에서는 가끔 보편적 선(善)과는 반대방향으로 작용하는, 일종의 아이러니를 일으킬 때가 있다는 것이 문제다.

1997년초. 아시아 경제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고, 거품이 급격히 꺼지던 위급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공공의 적’인 한보그룹을 겨냥해 유례가 드믄 ‘정의의 축제’를 벌였다. 검찰은 정태수 당시 총회장을 구속했고, 한보 측으로부터 돈을 받아먹은 정치인과 은행권 인사들을 이 잡듯이 뒤져 나갔다. 국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연말로 다가온 대선을 겨냥해 때를 놓칠세라 청문회를 열고 불법과 비리를 성토하는데 열을 올렸다.

모두들 정의가 바로 서고, 불법과 비리가 청산되리라는 느낌 속에 살았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국내 금융기관의 신인도 급락이었고, 일본계 금융기관의 무차별적인 자금회수였다.

위기 속에 출사한 강경식 당시 부총리 역시 따지고 보면 우리경제의 구조개혁과 시장경제라는 확고한 ‘정의’를 세우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국민기업을 살려내라’는 오도된 여론과 타협하지 않고 ‘원칙대로’ 기아를 처리하기 위해 그 뜨겁던 여름을 꿋꿋이 버틴 것도 나름대로 분명한 소신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이도 저도 못하고 싸움소처럼 버틴 끝에 돌아온 것은 유동성 함정과 바닥까지 곤두박질 친 국가신인도, 그리고 굴욕적인 국제통화기금(IMF) 신탁통치였던 것이다.

물론, 이런 파국의 책임을 ‘정의’가 져야 한다는 억지를 부리자는 건 아니다. 출근길의 승용차 접촉사고도 수 십여 가지의 우연이 겹쳐야 발생한다는 얘기처럼, 당시의 파국은 필연을 향해 수많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당시의 민감한 상황 속에서 거칠 것 없던 ‘정의’가 사태 악화를 가속화시킨 측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 보편적 지적이고 보면, ‘정의’에도 때에 따라서는 유연성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정의의 아이러니’를 거론하는 것은 우리 경제의 소중한 자산인 현대차그룹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현대차그룹 총수일가는 명백한 비리와 불법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당연히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그러나 세계 자동차 산업의 격변기를 맞아 글로벌 톱5를 향해 매진하고 있는 현대차의 도전이 이번 사건 때문에 만의 하나라도 흔들릴 여지가 있다면, 우리 모두는 현대차의 연착륙을 위해 보다 높은 차원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정의의 방정식’이 해법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진 요즘이다. ‘정의’에 대한 검찰의 선명한 입장을 보면서, 어두운 밤하늘을 밝혔던 ‘별’에 관한 추억이 새삼 뇌리를 스친다. 헝가리 출신의 철학자이자 문학사가인 게오르그 루카치라는 사람은 지금은 사라진 ‘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장인철 경제부차장대우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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