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ㆍ11 테러를 일으킨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또 다시 목소리만으로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면서 자신의 위력을 과시했다.
빈 라덴의 육성 녹음 테이프가 23일 아랍권 위성 TV 채널인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공개되자 민주당은 기다렸다는 듯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전 실패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다. 아직까지 빈 라덴을 체포하지 못했기 때문에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마땅히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빈 라덴의 경고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빈 라덴은 1월에 이어 올들어 두번째로 공개된 육성 녹음 테이프에서 하마스 주도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서방의 원조중단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이슬람을 상대로 십자군 전쟁을 벌이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빈 라덴은 이어 십자군 전쟁의 책임을 해당국 국민들도 똑같이 져야 한다고 주장, 서방국가 민간인에 대한 테러공격을 정당화했다.
그는 내전 상태에 있는 수단에 유엔이 평화유지군 파견을 추진중인 것과 관련해 “수단에서 십자군의 약탈에 대비한 또 다른 장기전을 준비할 것을 이슬람 전사들에게 촉구한다”며 수단을 새로운 전선으로 부각시켰다.
빈 라덴 육성에 대한 민주당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 후보였던 존 케리 상원의원(매사추세츠)은 ABC 방송에 출연, “육성 테이프는 부시 행정부가 알 카에다를 소탕하는 대신에 이라크에서 시간을 낭비해왔다는 증거”라고 몰아 세웠다. 그는 또 “빈 라덴 체포 실패는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사퇴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잘메이 할릴자드 이라크 주재 미 대사는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빈 라덴의 경고를 무시해서는 안 되며 신중히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고 말해 부시 행정부 내에서도 우려가 점증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미 백악관은 문제의 육성이 빈 라덴의 목소리가 맞다고 확인하면서도 “육성 공개는 알 카에다 지도부가 아직 도망중이며 심한 정신적 압박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파장축소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빈 라덴이 십자군 전쟁을 거론하며 팔레스타인에 유대감을 표시한 것과 달리 하마스 정부는 오히려 알 카에다와의 무관함을 강조하며 거리를 두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사미 아부 주흐리 하마스 대변인은 “빈 라덴이 말한 것은 그의 개인적 견해”라면서 “하마스의 이념은 빈 라덴이나 알 카에다의 이념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는 알 카에다와의 연계성이 서방의 압박을 강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워싱턴=고태성특파원 tsgo@hk.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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