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병은 국내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문제는 아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대기업병은 30여년간 고도 성장을 이뤄낸 우리 경제가 선진 경제구조로 한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이라고 진단한다. 경제 규모나 기업의 외형적 덩치는 커진 반면, 내부 관리ㆍ운영의 노하우와 지배구조는 이를 따라가지 못해 발생하는 과도기적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외국의 내로하라는 대기업들도 이런 진통을 겪었다. 이 과정을 슬기롭게 극복한 기업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일본의 소니와 도요타가 대표적이다.
소니는 급변하는 시장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해 LCD TV부분에서는 일본의 샤프에, 오디오는 아이팟을 만든 미국의 애플에 1등 자리를 내주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지난 해부터 업계의 흐름에 빠르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일본내 비난을 감수하면서 LCD TV 브라비아의 공급망 확대를 위해 경쟁 업체인 삼성전자와 합작으로 LCD패널 공장을 설립, 지난 해 창사 이래 최대의 실적을 기록했다.
일본의 교세라는 세계 세라믹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대기업이다. 이 회사는 아메바 경영을 통해 조직의 슬림화는 물론 유연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적게는 2~3명, 많게는 30여명으로 구성된 3,000여개의 아메바 조직은 팀장의 책임 아래 이익창출은 물론 원가절감을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도요타는 꾸준한 원가절감 및 노사화합으로 10년 이상 장밋빛 나날을 보내고 있다. 주력 제품인 렉서스를 앞세워 3년 연속 순이익 10조엔을 기록했다. 반면 미국의 GM은 판매부진에 저조한 영업실적 등이 겹쳐 도요타에 1위 자리를 내줄 위기에 몰렸다.
업계 관계자는 “도요타가 50년 무분규, 노조임금동결, 원가절감 노력 등에 힘입어 잘 나가고 있는 반면 GM은 노조의 과도한 요구, 의료비 부담, 시장 변화에 맞춘 제품개발 실패 등으로 하락추세에 있다”며 “두 기업의 사례는 대기업병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좋은 본보기”라고 말했다.
삼성과 현대ㆍ기아차그룹 등 재벌의 경영권 대물림 과정에서 보여준 투명하지 못한 경영방식도 개선돼야 한다. 세계적인 통신회사 에릭슨을 소유한 스웨덴의 인베스터 AB는 재벌 기업임에도 불구, 투명경영의 대명사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LG그룹 정도만이 지주회사 등록을 마쳐 건전경영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이다.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기업경제연구부 부장은 “무엇보다 회사 경영은 2세에게 대물림해야 한다는 인식보다는 전문경영인체제로 전환,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다수 재벌 기업이 내부거래 등을 통해 계열사 중심의 성장을 해오다 보니 국제 경쟁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만큼 사외이사로 구성된 내부거래위원회를 구성, 엄격한 관리를 통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서울대 이동기 교수(경영학과)는 “대기업병은 커진 기업 규모에 비해 후진적인 소유 및 경영구조의 괴리에서 오는 문제”라며 “우리사회에도 이제 이런 괴리를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이뤄져야 기업들이 한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병 치유의 해법으로 LG그룹 같은 유럽식 지주회사안과 계열사들이 독립경영을 하는 느슨한 연대 방식의 일본식, 그리고 유럽식과 일본식을 적절히 조합한 새로운 방식 중에서 우리실정에 맞는 것을 골라야 한다고 제시했다.
한창만 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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