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1988년 대통령 선거 초반 당시 민주당의 듀카키스 후보에 지지율이 무려 17% 포인트나 뒤처져 있었다. 다급해진 부시 후보 진영은 폭로와 흑색선전, 인신공격 등 꽤 비열한 선거전에 나섰다.
당시 매사추세츠 주지사였던 듀카키스가 인권보호 차원에서 실시한 교도소 수감자들의 휴가제도는 부시 진영의 좋은 공격거리가 됐다. 살인죄로 복역중인 흑인 수감자가 휴가 도중 성폭행을 저지르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부시 진영은 광고와 유세를 통해 듀카키스가 대통령이 되면 수많은 수감자들이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언론들은 부시 진영이 정책 선거보다는 폭로와 흑색 선전을 일삼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력한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유세이니 만큼 그대로 보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부시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후에 ‘더러운 선거전’(Dirty Campaign)으로 명명된 부시 진영의 흑색선전을 언론이 그대로 중계보도를 해야 했는가에 대한 대대적인 반성과 언론 개혁 운동이 일어났다.
언론과 대학, 시민세력이 함께 수 년간 고민한 끝에 나온 개혁 방안은 중계식 선거 보도를 지양하고, 언론과 시민이 적극적으로 정책 선거 이슈를 주도해 나가자는 것이었다. 정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 전당대회의 방송중계는 중단되거나 축소됐고, 언론은 정당과 정치인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중계하지 않고 나름대로 분석하고 해석해 보도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해석 저널리즘’의 탄생 배경은 그러했다.
깨끗하지 못한 선거운동으로 당선된 부시 대통령은 임기 내내 언론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걸프전에 힘입어 지지도가 90%까지 올랐지만 1992년 재선 시도 때는 언론의 냉담한 반응으로 민주당 클린턴 후보에게 패하고 말았다.
5ㆍ31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후보들간 인신공격, 추문 들추기, 근거 없는 자격시비, 색깔론 등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또한 많은 흑색선전들이 거름 장치 없이 언론을 통해 그대로 유권자들에게 중계될 터이다.
선거전은 속도전이기 때문에 정치꾼들은 ‘치고 달리기’ 식으로 흑색 선전을 하고, 진위 여부가 가려지기 전에 선거가 끝나 버린다. 정치꾼들은 비열한 선거전으로 당선의 효과를 누리지만, 그것이 흑색선전으로 판명 나도 사후 처벌은 흐지부지 되기 일쑤다. 선거전에서 흑색선전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이유다.
언론은 흑색선전과 공생관계에 있다. 흑색선전은 믿을 수 없고 저급한 내용이지만 당장은 독자나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기 좋은 뉴스 상품이다. 사실 여부를 따지고 검증하는 기사에 비해 품도 적게 들고 어찌됐든 정치권에서 ‘발생’한 사건이므로 기사의 형식요건도 갖춰져 있다. 언론이 한편으로 흑색선전을 비난하면서도 그것의 확산에 일조하게 되는 이유다.
그러나 사람들은 흑색선전을 접할수록 정치적 냉소가 늘고 흑색선전을 그대로 중계하는 언론도 불신하기 시작한다. 결국 흑색선전은 정치도 죽이고 언론도 죽인다. 언론 살리기 운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돼야 한다.
언론은 ‘있는 그대로 보도한다’는 형식적 사실 보도에 집착한 흑색선전의 중계 보도를 중단해야 한다. 대신 사실 확인과 검증을 거친 정책 보도로 언론의 무게 중심을 잡아야 한다. 5ㆍ31 지방 선거에서 한국판 해석 저널리즘은 탄생할 수 있을까.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최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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