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을 거듭하던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 사법처리 방안이 26일 저녁 사전구속영장 청구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검찰이 결국 경제적 파장을 우려하는 현실론보다는 책임에 상응하는 처벌이라는 원칙론을 택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정 회장이 검찰에 나와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기는커녕 이미 확인된 혐의마저 부인한 것이 검찰의 영장 청구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정 회장이 혐의를 대부분 부인하고, 자신에 대한 수사조차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였다”며 “증거인멸의 가능성까지 감안해 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경제적 악영향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제기됐지만, 불확실한 ‘경제위기론’을 수용하기에는 정 회장의 비리 혐의가 너무 중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알려진 정 회장의 혐의는 1,100억 원대의 비자금 조성, 계열사 부채탕감 비리 등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사실 정 회장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정도 사안을 놓고 영장 청구 여부를 고민할 이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 회장이 구속되면 경영권 공백과 해외사업 차질이 예상되고 이는 결국 경제위기를 불러올 것이란 재계의 경고가 수사 막바지에 검찰의 발목을 잡았다. 이 경고가 현실화할 경우 검찰이 그 책임을 모두 뒤집어써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정 회장보다는 아들이자 경영권 승계의 수혜자인 정의선 사장을 구속하는 것이 낫다는 대안도 나왔다. 그러나 이 경우 혐의가 가벼운 인사가 더 무거운 처벌을 받는 것이어서 법 적용의 형평성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반론이 강했다.
검찰로선 이번 사건이 재벌 수사의 또 다른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정 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못할 경우 앞으로 재벌 총수의 어떤 비리를 적발해도 구속 수사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수사 초기부터 일관했던 수사팀의 강경한 입장도 관련이 있다. 경제위기론도 감안해야 하지만 ‘원칙적인 사법처리를 통해 경제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게 수사팀의 논리였다.
하지만 재계 2위 그룹 총수의 영장 청구로 검찰에 미칠 역풍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현대차가 경영위기에 봉착할 경우 ‘검찰이 정의만 앞세우다 경제를 망쳤다’는 비난이 쏟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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