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러브스토리라고 늘 관객의 외면을 받는 것은 아니다. 백마 탄 왕자와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다 불치병에 걸려 죽는 스토리라도 어떤 신파는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그 순간의 감정이 진실하고 디테일의 현실감이 살아있기만 하다면, 관객은 왕자나 공주를 보면서도 자신의 평범한 연인을 떠올리고, 불치병도 사랑의 생채기에 대한 하나의 메타포로 가뿐하게 치환한다. 요컨대, 세부의 진실성과 정서의 리얼리티가 관건인 것이다.
자신의 몸을 만지면 저주가 옮는다고 주장하는 잔망스러운 소녀 아리(강혜정)와 그녀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는 순진한 소년 조강(조승우)의 20년에 걸친 첫사랑을 그리는 영화 ‘도마뱀’은 전ㆍ후반부로 나눠 1, 2편으로 상영했으면 좋았을 영화다. 시골 암자의 연초록빛을 배경으로 판타지와 일상, 현실과 비현실을 깔끔하게 이어붙인 전반부는 청신한 첫사랑의 이미지를 스크린 가득 펼쳐놓으며 단 세 번의 만남으로 20년을 지속하는 사랑을 한 번쯤 믿어보고 싶게 만든다.
아리가 자신과 몸이 닿은 조강이 홍역을 앓자 자책감으로 홀연히 모습을 감춘 후 10년 만에 이뤄진 재회까지 영화는 무공해 청정 에피소드들로 아리와 조강의 설레는 감정을 사랑스럽게 직조해낸다.
그러나 조강을 또 다치게 한 후 8년 만에 이뤄지는 세번째 만남부터 영화는 ‘신파본색’을 드러내며 전반부에 구축해놓은 세부의 진실성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꼬리를 끊고 도망치는 도마뱀처럼 조강을 피해 숨어버리는 아리의 비밀이 밝혀지는 후반부 이후 스크린은 관객과 소통하길 거부하는 두 연인의 은신처가 돼 그들 사랑에 대한 관객의 동참을 봉쇄한다.
보는 이의 머리 속엔 왜 조강이 아리를 못 잊는지, 왜 8년이나 아리를 찾아 헤매는지, 왜 저토록 절박하게 울고 불며 사랑의 클리셰들을 쏟아내는지 온갖 의문부호가 떠오르지만, 영화는 관객을 설득하려 하지 않고 단지 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신을 믿으라는 ‘전도부인’처럼 그들 사랑의 자명함을 믿으라고 종용한다.
다만 서사의 설득 불가능한 부분을 조승우와 강혜정이라는 실제 연인의 아우라로 메우려 한 것은 영리한 셈법이었음이 분명하다. ‘왜 저렇게 우는 거지?’ 같은 물음에 ‘실제 사랑한다잖아’ 같은 어리석은 자문자답이 영화를 보는 내내 자연스럽게 이뤄지니 말이다. 27일 개봉. 12세.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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