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연쇄살인사건이 또 발생했다. 지금껏 드러난 것만 해도 열세 살 어린이를 포함해 무고한 시민 5명이 무참히 살해되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더욱 기가 찬 것은 이런 짓을 저지른 범인의 태도이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혀를 내밀어 냉소하며 “가난해서 늘 손해만 봤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부자들만 보면 죽이고 싶었다”고 자못 당당하게 동기를 밝혔다. 그의 말은 모든 언론에 큼직하게 다뤄졌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진짜 범죄자는 그가 아니라 그를 범죄자로 만든 사회가 됐다. 과장하자면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죄인이 된 셈이다.
▦2년 전 희대의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사에 남은 범죄자들인 지존파도, 막가파도, 김대두도, 또 살인을 저지르진 않았지만 한동안 서울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지강헌 등 탈주범들도 입을 맞추듯 범행원인을 사회의 왜곡구조로 돌렸다. 범인들만이 아니다.
전문가나 지식인을 자처하는 이들의 진단도 번번이 같은 맥락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들이 잘못을 돈으로 대신 갚으려는 모습을 보며 사회적 약자들은 더욱 분노하게 된다” , “빈부격차나 사회적 윤리의 부재가 극단적인 범죄를 불렀다”는 따위가 그런 것이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자. 마치 거대한 사회 부조리의 덫에 치인 것처럼 스스로를 변명하는 범인들이 목표로 삼은 범죄대상은 대부분 그들 자신만큼이나 가진 것 별로 없는 사회적 약자든지, 아니면 여성이나 노인 어린이와 같은 만만한 신체적 약자들이었다.
말하자면 이들의 당초 범죄동기는 돈이나 성(性)의 손 쉬운 취득 목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이후 ‘성공’에 대한 자신감이 붙으면서 범죄 자체가 주는 쾌감에 변태적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내뱉는 상투적 언설은 부지불식간에 학습된 핑계에 불과한 것이다.
▦분명히 해두거니와 동기 없는 범죄란 없다. 그리고 그 동기는 일차적으로 범행 당사자의 비뚤어진 인식과 태도에 직접 관련이 있다. 사회구조적 원인을 찾는 것이 전혀 틀렸거나 무용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걸핏하면 범죄를 추상적 원인(遠因)으로만 돌리는 것은 구체적인 책임소재나 해결책조차 찾을 수 없게 만들 뿐더러, 무엇보다 열심히 일상을 살아가는 애꿎은 시민 모두를 심리적 가해자로 모는 행위다. 불특정 다수에게 당연히 원인을 돌리는 현상이 오히려 불특정 다수대상의 범죄를 쉽게 저지르도록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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