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납북피해자의 상징적인 존재인 요코타 메구미씨의 아버지 요코타 시게루(橫田滋ㆍ73)씨를 25일 가나가와(神奈川)현 가와사키(川崎) 자택에서 만났다.
백발이 성성한 그는 인간으로서, 또 부모로서 견디기 힘든 비극을 평생 안고 살아왔지만 온화하고 절제하는 자세를 잃지 않으며 납북자 문제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최근 한국인 납북자 김영남씨가 딸의 남편일 가능성이 크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딸의 남편이 한국인이어서 정말 잘됐다고 생각했다. 딸 부부와 손녀(평양에 사는 김혜경)가 돌아 올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만일 남편이 북한 사람이었다면 불가능해질 것이다. 두 사람이 사이가 좋았다는 소리도 들려오고…. 같은 납치 피해자끼리 결혼했기 때문에 의지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DNA 검사 발표 이후 한국에서도 납북자문제가 여론화하고 있고, 24일 열린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는 이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합의가 나오기도 했다.
“일본 신문을 통해 읽었다. 이 문제에 대해 그 동안 차가웠던 한국의 여론도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가 최선을 다해 배려해 주었으면 좋겠다. 한국 국민들도 인권문제로서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만 한국 정부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북한에 대가를 제의했다고 들었다. 주위에서는 북한이 김영남씨만 돌려보내는 식으로 한국과 일본을 이간질 할 수 있다는 말도 나와 약간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일본의 납치자 가족회와 시민단체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제제재를 주장하고 있는데.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해결됐으면 한다. 일본 정부가 북한에 의한 납치피해자의 존재를 인정한 것은 2002년 이후의 일이다. 그 후로 북한에 대해 압력을 가하려고 하고 있지만 과연 성과가 있을지, 정답은 보이지 않는다.”
-김영남씨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부부가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들었다.
“될 수 있으면 빨리 만나고 싶다. 그러나 27일 예정된 미국 하원 청문회와 각종 강연 약속 때문에 늦어졌다. 일본 연휴가 겹치는 5월 초순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만나서 서로 위로하고 싶다. 사돈간의 예의도 표하고 싶다. 김영남씨 가족의 일본 초청은 5월 28일로 일단 날을 잡아놓고 있다. ”
-미 하원 청문회에서 부인은 무엇을 호소할 생각인가요.
“내가 몸이 좋지 않아 아내만 미국에 보냈다. 납치라는 범죄행위의 부당성과 납치피해자 가족들의 인간적인 아픔 등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
-딸이 실종된 이후 정말로 많이 힘들었을 텐데.
“딸이 살아있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다. 20년 동안 국내 실종사건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북한에 납치됐다는 사실을 알고 오히려 희망이 생겼다. 딸이 돌아 올 수 있다는 희망이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 요코타 메구미는 누구?
한국인 납북자 김영남(金英男ㆍ1978년 남북당시 16세)씨의 부인일 가능성이 높은 요코타 메구미씨는 1977년 11월 15일 저녁 일본 니가타(新潟)현 니가타시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됐다. 배드민턴에 소질을 보였던 메구미씨는 이날 얼마남지 않은 현 대회 출전을 위해 학교에서 특별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메구미씨는 북한에서 다른 일본인 납치피해자에게 “집 근처 골목길에서 남자에게 붙잡혀 끌려갔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서 간첩으로 체포돼 복역한 뒤 북송된 신광수씨에게서 한국말과 사상 등을 교육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인 납치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메구미씨는 84년 가을 평양 근교의 마을로 이송돼 나중에 결혼한 남자 공작원에게 일본어 교육을 시켰다. 이 남자가 바로 김영남씨로 추정된다. 북한은 메구미씨가 86년 결혼해 87년 딸 김혜경양을 출산했고, 94년 4월 병원에 입원해 자살했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은 2004년 11월 메구미씨의 사망을 증명하기 위해 유골을 일본에 보내왔으나 일본측의 감정 결과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밝혀져 일본 납치피해자 가족들을 격분시켰다.
메구미씨의 가족은 북한이 94년 자살했다고 설명하는 메구미씨가 95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아들의 가정교사로 일했다는 확실한 증언이 나왔다고 주장하며 메구미씨와 김혜경양을 돌려보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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