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과 류승범. 스크린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꽃미남’ 배우도 아닌데 슬그머니 충무로의 주역으로 자리잡은 배우다. 출연하는 영화마다 자신만의 인장(印章)을 찍으며 조금씩 영역을 넓혀왔던 두 사람은 연기의 결이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하다.
둘은 불량기 가득한 눈빛으로 관객의 가슴을 서늘하게(‘달콤한 인생’ ‘주먹이 운다’) 하다가도 정색하며 여린 눈빛으로 여자에게 순정을 바치는 남자(‘너는 내 운명’ ‘야수와 미녀’)로 돌변해 왔고, 때로는 어수룩한 행동(‘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아라한 장풍대작전’)으로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액션과 멜로 등 장르의 벽을 무력화 시키며 변신을 거듭해온 두 사람이 수컷 냄새 물씬 풍기는 누아르 영화 ‘사생결단’에서 광기어린 행동으로 맞부딪힌다. 둘의 만남은 2001년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후 두 번째. 황정민은 “영화를 잘 모르고 열정만 있던 시절을 지나 다시 만나니 더욱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것 같다”며, 류승범은 “둘이 좋은 작품으로 만날 수 있는 배우가 된 것이 기분 좋다”며 서로의 결합을 반겼다.
현실에선 우애 두터운 형제처럼 살갑게 대하지만 스크린 속 두 사람은 서로 죽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치열한 생존 싸움을 벌인다.
마약 판매를 벤처 사업으로 여기고 사업확장에 여념이 없는 이상도(류승범)와 그를 이용해 거물 마약상 장철(이도경)을 잡으려는 마약반 형사 도경장(황정민)의 불안한 공생과 파국을 다룬 ‘사생결단’의 내용은 IMF 직후 부산 뒷골목의 세밀화 일뿐 아니라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현대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바이준’ ‘후아유’ 등 주로 청춘의 사랑과 상실을 그려온 최호 감독이 1년을 발로 뛰며 취재한 ‘마약의 세계’는 스크린 속에서 활어처럼 팔딱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화면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것은 오랜 파트너처럼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는 두 사람의 연기다. 류승범은 이를 “촬영 기간 4개월 중 3개월을 한 아파트에서 동고동락하며 얻어낸 결과물”이라고 말하고, 황정민은 “눈뜨면 보고, 같이 고민을 공유하고, 그러다 보니 작품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맞장구친다.
국내 영화로는 드물게 마약을 전면에서 다룬 영화지만 두 사람은 “많은 자료를 참조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어차피 영화는 영화적으로 상상해서 구축하는 세계”(황정민)이고 “(‘사생결단’은) 상세한 묘사보다는 인물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중요한 영화”(류승범)이기 때문이다.
항상 변신을 꿈꾸며 다른 모습을 보여온 듯한 두 사람. “자신을 부르는 연극이 있으면 언제든지 무대에 다시 서겠다”는 황정민의 차기작은 제목 미정의 휴먼 드라마다. 역시 “뮤지컬이든 TV드라마든 마음의 경계선은 없다”는 류승범은 옴니버스영화 ‘멋진 신세계’의 40분짜리 중편에서 좀비 역을 연기한다.
그러나 둘은 변신을 마음에 품고 연기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냥 제가 끌리는 영화를 할뿐이에요. ‘또 다른 모습 보여 드릴께요’라고 말하는 배우들 보면 신기해요. 인물의 다양성을 미리 계산하고 영화에 임하면 오히려 기계적으로 연기하게 됩니다.”(류승범) “처음부터 자신에게 맞는 배역은 없죠. 계속 노력하고 연구하면서 배역을 만들어가는건데, 관객들은 변신을 잘했다거나 딱 맞는 역할을 만났다고 생각하는 거죠.”(황정민)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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