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우리 조상들은 삼베 재질의 수의(壽衣)를 별도로 만들지 않았다. 조선시대 무덤에서 출토되는 수의는 배냇저고리나 혼례복, 관복, 치마 저고리, 심지어 임부복 등 생전에 고인이 입던 옷들이다. 삼베로 수의를 지었다는 기록이나 삼베로 된 수의가 발견된 사례는 한 번도 없다. 삼베 수의는 옛 전통이 아니라 일제시대 이후 급속히 번진 유행일 뿐이다.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김우림)은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관장 정영호)과 함께 26일부터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딸인 청연군주(郡主ㆍ왕세자와 정실 사이의 딸)의 당의(唐衣ㆍ예복) 등 조선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옷을 전시하는‘다시 태어난 우리 옷, 환생’특별전(5월28일까지)을 연다. 전시회는 조선의 시기별, 성별, 연령별, 종류별로 다양한 무덤 출토 옷 100여 점, 원래 색상 등을 살려 재현한 작품 25점, 출토 복식 연구의 개척자인 고 석주선 박사 유품 90여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중 청연군주(1754~1821), 해평 윤씨(1660~1701), 경주 이씨(1684~1753) 등 여성 의복 20여 점은 학계에서만 한정적으로 공개됐던 것으로 일반 공개는 이번이 처음이다.
정조의 누이동생인 청연군주가 입던 당의는 겹으로 지어진 두 벌의 당의가 한 벌처럼 끼워져 있는 왕실용으로, 조선 전기와 달리 소매가 매우 좁고 길어지는 후기적 특징을 보여준다.
2001년 경기 양주군에서 발굴된 해평 윤씨의 자수저고리는 혼례복으로 입는 활옷이나 아동복을 제외한 성인복에서 자수가 사용된 유일한 옷이다. 금실로 포도와 어린아이 문양(스란)을 넣은 청주 한씨(중종의 둘째 딸 의혜공주의 손녀)의 스란치마는 한복의 뛰어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출산 중 숨진 파평 윤씨(?~1566년)의 저고리는 발굴 의복 중 유일한 조선시대의 임부복으로, 두 겨드랑이 아래쪽의 안쪽으로 주름을 접어 풍성하게 하는 등 배가 불러오는 신체적 특징을 세심하게 배려한게 눈에 띈다.
통례원 정5품 찬의 정온(1481~1538)의 묘에서 출토된 적삼은 부인 남원 양씨(생몰 불명)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옷 앞쪽엔 보살상 비천상 다라니경이, 뒤쪽과 소매 부분에는 연꽃 문양이 찍혀 있어 남편의 명복을 비는 아내의 애절한 마음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출토복식연구회 회장인 박성실 단국대 교수는“조선시대 무덤에서 수의를 벗겨보면 삼베는 없고 모두 평소에 입던 옷이 나온다”며 “조선 후기에 수의를 일부러 짓는 경향은 있었으나 삼베는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제시대 이후 삼베 수의가 유행하게 된데 대해 서울역사박물관측은 “당시 어렵게 살면서 주위에 흔히 있는 삼베를 수의 소재로 삼았을 가능성이 있다”며 “일제시대 이후 삼베를 고급 옷감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수의 문화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밝혔다.
전시회에는 해평 윤씨 무덤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소년의 미라와 옷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소년은 여섯 살 되는 해 5월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소년을 감싸고 있던 다소 큰 옷들이 부모와 형의 것으로 밝혀져 애틋한 가족애를 느끼게 한다. 소년 미라는 아직도 손으로 피부를 누르면 탄력이 있을 정도로, 보관 조건이 까다로워 30일까지 5일간만 전시할 예정이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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