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문(55) 밀레코리아 사장의 얼굴에는 단단함과 유연함이 동시에 베어 있다. 단단함은 오랜 기간 종합상사의 해외지사 생활 속에서 다져진 뚝심 혹은 다부짐 같은 것이고 , 유연함이란 객지 생활 속에서도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는 낙천적인 성격이다.
독일에 본사를 둔 밀레는 세계 최초로 세탁기와 식기세척기를 발명한 회사로 1899년 창업한 이후 지금까지 외길을 걸어온 명품 가전업체다. 단단한 강철을 재료로 주부들의 여유로운 생활을 돕는 가전회사의 대명사 밀레와 안 사장의 궁합은 그래서 절묘하게 느껴진다.
안 사장이 강철 같은 강인한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30년 전 쌍용에 입사하면서 비롯된다. 입사 6년차로 30대 초반이던 1982년 그는 회사 최연소 나이로 쿠웨이트 지사장을 맡게 됐다.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 이란-이라크 전쟁이 터졌다. 중동의 무역 중심지가 불바다로 변하면서 중동시장에서의 사업자체가 불투명해졌다. 처음으로 그에게 닥친 시련이었고, 그는 과감하게 지사 철수를 결정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니 회사에서는 안 사장에게 직원 2명을 줄 테니 아무 일이나 해보라고 제안했다. “즉각 일본에 시멘트를 수출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출했더니 정신 나갔다며 손가락질을 해댑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일본은 연간 1,000만톤의 시멘트를 수출하는 시멘트 강국이었거든요.”
안 사장은 그러나 당시 일본 내수시장에서 시멘트 값은 톤당 100달러 정도로, 국내 30달러에 비해 훨씬 비싸 동해에서 시멘트를 싣고 수출한다면 가격경쟁에서 승산이 있다고 믿었다. 예측은 주효했고, 쌍용은 84년 가을 일본에 1만톤급 사일로 건설과 함께 시멘트 수출을 시작하게 된다.
안 사장은 87년 미국 시멘트 시장 공략을 위해 미국 지사로 자리를 옮긴다. 사일로 부지선정을 위해 앵커리지에서 샌디에이고까지 서부 해안을 수십 차례 오르내린 끝에 샌프란시스코에 5만톤급 사일로를 3년 만에 완공하고, 이듬 해 귀국했다.
96년 11월부터 태국 지사장을 거친 그는 2000년 국내 정착을 결심하고 쌍용과의 끈질긴 인연을 스스로 끊기 위해 사표를 냈다. 이후 2003년 코미상사(밀레의 한국대리점)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당시 밀레 본사는 한국에 대리점 대신 직접 투자를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밀레측은 안 사장과의 만남이 거듭될수록 그의 뛰어난 조직 통합력과 15년 넘는 해외생활에서 터득한 외국 문명에 대한 이해도 등에 관심이 끌렸다. 결국 밀레는 안 사장 영입을 조건으로 대리점 대신 지사를 설립키로 했으며 그를 초대 지사장에 임명했다.
지난 해 8월 밀레코리아의 대표로 정식 취임한 그는 또 한번 시련을 맞았다. 환율하락 여파로 식기세척기 등 명품 가전제품의 매출이 뚝 떨어진 것이다. 다른 수입 가전제품은 가격인하를 단행했지만, 안 사장은 오히려 제품 가격을 올렸다.
당장 매출이 급감했지만, 그는 기다렸다. 4개월 가량 지나니 매출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안 사장은 “이제는 다른 제품과의 가격차가 두드러지면서 ‘밀레=명품’이라는 이미지가 더욱 굳어졌다”며 “강남을 비롯한 고급 아파트 시장에서 가장 선호하는 빌트인 가전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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