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안 '밥그릇 싸움' 日업체에 1위 뺏겨
삼성SDI는 지난 한해 말 못할 고민을 해야 했다. 1년여전 만해도 전세계 PDP 생산부문에서 최강자였으나, 지난해 연말부터 1위 자리를 일본 마쓰시타에 내주었기 때문이다.
타이밍이 생명인 신ㆍ증설 투자가 제때 이뤄지지 못한 탓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삼성SDI가 PDP 경쟁 제품인 LCD를 만드는 삼성전자의 ‘눈치’를 보느라 증설 타이밍을 놓친 게 아니냐는 말이 나돌았다.
이 회사가 주춤하는 사이 일본 업체 등은 투자에 적극 나섰다. 이로 인해 삼성SDI는 올해 LG전자에 뒤져 3위로 밀려날 처지에 놓였다. 삼성SDI는 지난달 PDP 공장 증설에 나서기로 했지만, 경쟁사에게 선점을 당한 상태여서 정상 탈환이 쉽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는 대기업의 비대화한 조직 형태가 계열사간 시너지 효과를 거둬야 할 그룹경영에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는 사례다.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선단식 경영을 통해 ‘규모의 경제’ 효과를 톡톡히 봤던 대기업들이 이제는 계열사간 지나친 경쟁과 이기주의로 윈-윈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재무구조가 안정된 대기업일수록 조직의 경직성과 계열사간의 주도권 경쟁이 심하다. 식음료 재벌인 롯데의 경우 그룹 산하에 식ㆍ음료를 취급하는 계열사가 롯데칠성ㆍ제과ㆍ햄우유ㆍ삼강 등 4개나 있다. 이 계열사들은 대개 탄산ㆍ과실 음료나 유제품, 아이스크림, 빙과, 건과류 등을 만드는 데 상당수 제품이 서로 겹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롯데제과는 유제품이 들어간 빙과류, 롯데삼강은 아이스바 형태의 빙과류를 주로 만든다. 또 롯데칠성이 탄산음료에 주력하는 반면 롯데햄우유는 유제품이 들어간 음료를 제조한다.
물론 계열사간의 경쟁을 통해 제품 질을 높인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중복 투자에 따른 비효율과 계열사간 진입 장벽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게 회사안팎의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만약 롯데가 서로 나눠져 있는 계열사를 제품별로 유기적으로 통합ㆍ관리 했더라면 지금쯤은 세계적인 식품 업체인 스위스 네슬레를 따라 잡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시장을 두고 계열사끼리 경쟁적으로 진출하는 사례도 있다. SK그룹의 경우 중국 석유시장 공략을 위해 계열사별로 공략지역을 차별화하기로 했다.
SK㈜는 지난해말 중국 소매시장이 전면 개방되자 현지에서 주유소 등 석유사업 도ㆍ소매망 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SK네트웍스도 수년전 중국 선양과 단둥 주유소 사업에 진출, 20여개의 주유소 건설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룹계열사끼리 현지에서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기업이 일부 사업에서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데는 조직의 비대화ㆍ관료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그동안 대기업들은 총수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전문경영인의 전문성과 효율적인 조직에 힘입어 급성장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대기업 조직이 관료화ㆍ비대화하면서 계열사간 효율적인 자원배분과 의사결정을 저해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요즘 국제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에서는 ‘외부 경쟁보다 내부 경쟁과 견제가 더 어렵다’고 지적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서울대 조동성 교수는 “기업들이 생존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시장에 맞춰 자기 변혁과 혁신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한다”며 “대기업들도 기존 정형화한 조직 문화와 타성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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