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공양시간이었다. 막 공양을 하려고 하는데 문 밖에서 한 여인의 소리가 들렸다. “저 혹시 이 절에서 하룻밤 묵어 갈 수 있나요?”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안경을 쓰고 배낭을 멘 30대 초반의 여인이었다. 그녀를 보며 나는 알 수 없는 향수 같은 것을 느꼈다.
● 절에서 하룻밤 묵어간 30대 여인
70년대 후반의 무전여행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저 배낭 하나만 메면 어디든지 가고 싶었던 그 시절. 가다 노숙도 하고 마을에 들어서면 염치 좋게 밥도 좀 달라고 해서 먹던 그 시절의 기억이 아련하게 밀려왔다. 나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 시절 내 방랑의 모습을 만난 것이다. 반가웠다. 옛 시절이 생각나 나는 그녀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대접해 주었다.
공양을 마치고 나는 그녀와 함께 차를 마셨다. 적요한 산사에서 마시는 차는 그 차의 빛깔만큼이나 사람을 투명하게 한다. 나는 그녀에게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냥 걷고 있다고 답했다. 남해 바다를 끼고 길을 걸으며 마음을 정리하고 마음이 정리가 되지 않을 때는 길 끝에 있는 절을 찾아가 하루 밤을 묵고는 했다고 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왜 걷느냐고. 그녀는 자신을 잃은 것 같아서 이렇게 걷고 있다고 말했다.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스스로 낯설음을 느끼게 된다면 그 때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것에 대한 확인은 어쩌면 당혹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어느 날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수많은 날의 고뇌 끝에 그녀는 그토록 열심히 하던 자신의 일을 접고 그냥 길을 나섰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서 질문을 던졌다. 길 위에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고자 하는 그녀에게서 나는 삶의 진실을 보았다. 자신이 진정 원하고 자신이 진정 그리는 삶을 찾아 길을 떠날 수 있었던 그녀의 용기가 나는 부러웠다. 그것은 언제나 자신을 찾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과연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는 판단이 선다면 이 길을 떠나 다시 길을 찾을 수가 있겠는가. 자신이 없었다. 떠난다는 것은 기존의 자신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은 그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그것은 또 다른 고행을 의미한다.
● 자신을 찾아 떠나는 사람 부러워
그녀가 떠나고 나는 남해 바다를 걸었다. 나는 내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이 길은 나의 길인가. 나는 내 삶을 얼마나 진실하게 살고 있는가. 부끄러웠다. 삶을 다시 시작해 보고싶었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섬 남해에서 나는 아름다운 삶의 그 시작을 맞고만 싶었다. 그리하여 언제나 당당한 내 삶의 주인이고만 싶었다.
삶의 아름다움은 자기 찾기에 있다. 그때 비로소 삶은 욕망의 지배를 떠나 진실과 함께 하게 된다. 일상 속에서 나는 나를 잊고 살아만 가는 것은 아닌가. 그녀가 남기고 간 진실 하나가 푸른 해풍을 타고 선명하게 내게 다가왔다.
성전 스님ㆍ남해 용문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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