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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한명숙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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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한명숙 생각

입력
2006.04.2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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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잘한 일이 뭘까 되돌아보면 좀처럼 떠오르는 게 없다. 시끌시끌했던 그 세 해 세월에 그가 잘못했다고 생각되는 일을 떠올리는 게 너무 쉬운 것과 대조적이다.

2002년 선거에서 이회창씨가 아니라 자신이 대통령으로 뽑혀야 했던 이유를 그는 아직 지지자들에게도 납득시키지 못했다. 민주화 운동과 여성 운동 경력을 지닌 여성 정치인을 총리로 지명한 것은 그래서 그의 가장 큰 ‘치적’으로 여길 만하다.

그가 여성을 총리로 지명한 것이 여성정치나 여성운동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단기적 정치 정세 때문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첫 여성 총리 한명숙을 떠올리는 사람은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함께 떠올리게 될 것이다. 프랑스의 첫 여성 총리 에디트 크레송을 떠올리는 사람이 그를 지명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을 함께 떠올리는 것처럼.

● 여성 총리 존재만으로도 민주적

한명숙 총리가 큰 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없을 테고, 한ㆍ미 FTA의 방향이나 시기를 바꿀 수도 없을 테다. 그래도 이범석 이래 수십 명의 대한민국 총리 명단에서 여성의 이름을 처음 발견하는 일은 유쾌하다. 한 총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더 그렇다.

널리 알려진 대로 그는 10ㆍ26을 옥중에서 맞았다. 유신체제의 30대 여성 정치범이 그 뒤 30년이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 총리가 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제로로 보였을 것이다. 체제의 작동 원리에 따라 그를 고문한 수사관에게든, 그보다 훨씬 긴 옥살이를 하고 있던 남편에게든, 당시 총리 최규하씨에게든. 그 제로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든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한 효과임을 음미하는 것도 유쾌하다.

사실 노 대통령은 ‘이회창 대통령’이라면 안 이루고 못 이뤘을 ‘업적’을 인사 분야에서 얼마쯤 이뤄냈다. ‘이회창 정권’ 아래서라면 강금실 법무장관도, 김근태 보건복지장관도, 이해찬 총리도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물론 몇몇 논자들이 지적하듯 ‘밥그릇 싸움’의 결과고, ‘엘리트 순환’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총리 재직 시절 이해찬 의원이 보여준 무분별은 이런 냉소적 시각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정치가 권력 분배의 기술이라면, 비록 특정한 사회 문화적 계급 안에서라도 권력이 좀더 고르게 분배되는 것은 정치적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무관하지 않다. 이해찬 개인의 굴절과 상관없이, ‘이해찬 총리’는 ‘김종필 총리’나 ‘고 건 총리’보다 더 민주적이다.

한 총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말을 할 수 있다.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설령 그가 이해찬 전 총리처럼 실망스러운 처신을 한다 해도, ‘한명숙 총리’는 ‘김종필 총리’나 ‘고 건 총리’보다는 물론이고 ‘이해찬 총리’보다도 더 민주적이다. 그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한 총리는 최고위직 권력의 순환을 성적 소수자로까지 넓혔기 때문이다.

총리가 선출직이 아니라 임명직이라는 사실도 첫 여성 총리의 의미를 크게 깎아 내리지 못한다. 임명권자가 여성을 지명한 것 자체가 우리 사회 여성의 (잠재적) 힘을 반영한 것일 테니 말이다. 비록 성적 차원의 ‘엘리트 순환’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여성 총리의 등장은 여성의 고위 공직 사회 진입을 지금보다 더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보이도록 할 것이다.

● 소수자 위한 총리 역할 기대

그래도 나는, 한 총리가 정치적 반대파 출신의 ‘엘리트 여성’ 총리 이상이 됐으면 좋겠다. 여성이라는 그의 소수자 표지가 성의 테두리를 벗어나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가 “우리 딸들에게 희망을 주겠다”고 말했을 때, 그 딸들이 가난한 딸들, 재능이 모자라는 딸들, 장애를 지닌 딸들, 이주노동자의 딸들을 가리킨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이 설령 또 다른 ‘밥그릇 싸움’의 결과나 ‘엘리트 순환’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한 10년쯤 뒤에는 ‘한명숙 총리’보다 더 민주적인 ‘심상정 총리’나 ‘심상정 대통령’을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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