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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이효재씨, 이약신 목사 평전 펴내/ 아버지, 당신의 삶은 민족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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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이효재씨, 이약신 목사 평전 펴내/ 아버지, 당신의 삶은 민족의 삶…

입력
2006.04.2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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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의 전기를 쓰면서 비로소 아버지와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정과 사랑을 되살리면서 아버지의 화평한 성품과 유머러스한 인간미를 깊게 되새기는 기회였다.”

‘영원한 여성학자’ 이효재(82) 경신사회복지연구소 소장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쓴 평전 ‘아버지 이약신 목사’를 출간했다. 돌아가신 지 벌써 47년. 그 동안 가슴 속에 묻어둔 그리움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이약신(1898~1957) 목사는 평북 정주 출신이다. 막내아들로 태어나 아홉살에 아버지, 열세살에 어머니를 여의었지만 누나의 각별한 사랑으로 오산중학교를 졸업했다.

주기철 목사의 권유로 고향을 떠나 경남 웅천에서 목회를 펼쳤으며 그 뒤 그곳에서 결혼하고 터를 잡았다. 1929년 평양장로교신학교를 졸업하고 대한예수교장로회 경남노회장, 경남장로교법통노회 초대 회장을 지냈고, 1956년에는 고신파교단총회 초대 회장에 오르기도 했다.

일제의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바람에 파문되고 끝내는 감옥에서 순교한 주기철 목사처럼, 이약신 목사 역시 신사 참배를 거부하다가 옥고를 치렀다. 그 때에는 이 목사 뿐 아니라 온 가족이 일제의 핍박 때문에 이만저만 고생을 한 게 아니었다. 이 소장은 처녀 공출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마산시청에 말단 사무원으로 취직했다. 정신대로 끌려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식민정부에 협조하는 관청 직원이 된 것이다.

책에는 이 목사의 출생에서부터 진주 옥봉교회에서의 첫 목회, 호주 기독교 장로회 100주년 기념대회에 한국대표로 초청받아 6개월간 방문한 일, 사회복지법인 경신재단의 전신인 희망원 설립 등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실려있다.

팔순이 넘은 이 소장은 아버지 별세 당시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때라 임종하지 못한 사실이 지금도 가슴 아프다. 그때만 해도 내왕이 어려웠던 시절, 이 소장은 슬픔을 가슴에 안고 논문 준비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 산소를 찾고 불효를 빌었다.

이 소장은 “아버지의 삶과 활동에는 우리 민족의 주권 상실과 식민지배, 그리고 해방 후의 분단과 민족 분열 같은 민족 수난의 복잡한 시대적 배경이 맞물려 있다”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이 말처럼 그는 개인적 느낌이나 주관적 가치 기준에 의한 판단 혹은 논평은 피하면서, 가급적 객관적 사실을 중심으로 이약신 목사의 삶을 그리면서 그것을 통해 우리 민족의 고단한 역사를 보여주려 한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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