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21일 정의선 기아차 사장을 18시간 동안 조사한 뒤 돌려 보낸 데 이어 24일 정몽구 그룹 회장까지 소환함에 따라 현대ㆍ기아차그룹이 초비상 상태에 돌입했다.
특히 검찰은 아직 정 회장 부자에 대한 사법처리 방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결정한 바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룹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ㆍ기아차그룹은 21일 정 회장에 대한 검찰의 소환이 통보되자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비상경영계획 수립에 착수하는 등 긴박한 하루를 보냈다. 그룹은 정보망을 총 동원해 검찰의 수사 및 사법처리 방향에 촉각을 곤두 세우면서 전 임원들에 대해 주말에도 24시간 대기령을 발동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상황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급진전되면서 초비상 상태에 돌입했다”며 “정 회장이 구속되는 경우와 정 사장이 구속되는 경우, 두 사람이 모두 구속되는 경우로 나눠 비상경영계획을 검토 중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그룹이 상당한 타격을 입는 것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먼저 정 회장이 구속되는 경우 2010년 세계 자동차 글로벌 톱5에 진입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은 물 건너 갈 가능성이 크다. 정 회장의 경우 매일 아침 6시30분이면 서울 양재동 본사로 어김없이 출근, 계열사 사장의 보고를 직접 받을 정도로 손수 업무를 챙겨왔다. 이 때문에 정 회장이 없는 현대ㆍ기아차그룹은 사실 정상적 업무가 불가능하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정 회장은 또 내달 중순 체코 노세비체 공장 착공식도 앞둔 상태이다.
두번째로 정 사장이 구속되는 경우에는 기아차가 위기를 맞을 공산이 높다. 정 사장은 지난해 3월 기아차 사장에 취임, 경영 수업을 본격화하면서 기아차의 브랜드 정체성 확립과 해외 사업 확대 등에 힘을 쏟아 왔다. 그러나 최근 사태와 관련, 내달 10일로 미룬 기아차 조지아주 공장 착공식이 다시 무기한 연기되는 등 이미 글로벌 전략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엔 올해 연말로 예정된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 준공식도 제 때 이뤄질 지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정 회장 부자가 모두 구속되는 것은 최악의 경우로 현대ㆍ기아차그룹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나라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자동차 산업은 전후방 산업 효과가 큰 데다 직접 종사 인원만 22만명, 부품 및 판매ㆍ정비ㆍ서비스 등 관련 산업까지 포함하면 종사자가 153명에 달한다. 이는 전산업 고용 인력의 10.4%를 차지하는 것이다. 자동차 관련 조세액도 연간 23조7,000억원(2003년 기준)으로 총 세수의 16.9%에 해당한다.
그룹측은 검찰이 정 회장 부자가 국가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점을 감안, 이들 모두를 불구속 기소하길 내심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강한 수사 의지 등을 감안할 때, 이 같은 희망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동차 산업에 진입한 국가중 유일하게 독자 모델로 세계 시장에서 승부하고 있는 나라”라며 “지난해까지만 해도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이었던 GM이 올해엔 도요타자동차에 왕좌를 넘겨줘야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자동차 시장인 만큼 현대ㆍ기아차의 경쟁력이 훼손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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