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입주를 준비중인 A기업은 요즘 걱정이 많다. 개성에서 만든 제품은 국내 반입처럼 해외 수출에도 ‘한국산(産)’ 인정을 받는 줄 알았는데, 원칙적으로 수입국의 원산지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생산제품의 상당량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A기업으로선 향후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미국이 개성공단 제품을 계속 ‘북한산’으로 간주한다면, 그래서 대미수출이 사실상 봉쇄된다면 공단입주는 별 실익이 없게 된다.
개성공단제품을 ‘Made in Korea’와 ‘Made in DPRK(북한의 영문명칭)’중 어느 것으로 인정하느냐에 관한 원산지 규정문제가, 한ㆍ미 FTA협상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사안 자체가 정치적인데다, 협상결과에 따라 남북경제협력의 최대 성과인 개성공단의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어 본 협상 과정에서 농산물 못지않은 핵심의제가 될 전망이다.
기업들의 고민
개성공단 시범단지 15개 기업 가운데 미국 쪽 수출을 하고 있는 업체는 4개. 본 단지 입주예정기업 24개 중에는 절반인 12개 업체가 미국으로 생산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이들 기업으로선 한ㆍ미 FTA에서 원산지 규정이 어떻게 정의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지난 14일 대외경제연구원(KIEP)이 주최한 한ㆍ미 FTA관련 세미나에서 한 개성공단입주업체 관계자는 “개성공단제품이 한국산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 대미수출이 탄력을 받게 돼 중국이나 동남아로 공장을 옮기지 않고 개성으로 오려는 기업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즉, 개성공단제품에 ‘Made in Korea’라벨을 부착하고 미국으로부터 특혜관세를 적용 받게 된다면, 개성공단은 저비용 외에 저관세 매력까지 중국 동남아보다 오히려 나은 생산단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반대로 한ㆍ미FTA가 개성공단제품을 계속 북한산으로 간주하는 쪽으로 결론지어진다면 공단의 경제적 매력은 반감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절충?
우리 정부는 기왕에 타결된 FTA협정에서 개성공단 생산제품에 대해 대부분 ‘Made in Korea’ 인정을 이끌어 냈다. 지난달 발효된 한ㆍ싱가포르 FTA와 7월 발효예정인 한ㆍ유럽자유무역연합(EFTA)간 FTA에선 개성공단제품에 대해 한국산과 동일한 특혜관세를 부여했으며, 현재 협상이 진행중인 한ㆍ아세안 FTA도 같은 방향으로 합의를 이룬 상태다.
정부는 미국에 대해서도 개성공단 제품에 대한 ‘한국산 대우’ 원칙을 반드시 관철한다는 방침. 하지만 미 무역대표부(USTR)측은 “협정은 남한산에만 적용된다”면서 개성공단이 협상의제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관계자는 “개성공단 문제는 아주 힘든 협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은 어차피 USTR 차원을 넘어,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수준의 포괄적 한반도정책의 맥락에서 결정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설령 미국이 ‘개성공단=남한산’인정을 해주더라도, 그 대가로 다른 부문의 대폭적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이성철 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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