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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인간의 행복을 생각하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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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인간의 행복을 생각하는 기술

입력
2006.04.2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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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승용차로 통근하면서 자연스레 걷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그렇지 않아도 동그란 얼굴이 더 동그래졌다. 배까지 나오기 시작하면서 지하철 이용도 생각해보았지만, 선뜻 결심하지 못한 것은 지하철 안에서 보내는 시간의 무료함때문이었다.

● PMP로 즐거워진 출근·출장길

심심한 것을 못 참는 성격인 나는 어릴 적부터 혼자 있더라도 주변의 종이나 잡동사니를 모아 무언가를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취미도 무척 다양해졌고, 주위에서는 나를 보고 심심할 겨를이 없는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격이 그렇다 보니 지하철에서 멍하니 사람들 사이에 그냥 서 있는 것은 정말 싫은데다, 혼잡할 때는 책 보기도 힘들어 고역이었다.

이런 나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가 보고 싶은 영화나 스포츠를 보면서 이동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이었다. 1년 반 전 나의 바람은 마침내 이루어졌다. 우연히 인터넷 쇼핑몰에서 나의 바람을 실현시켜 주는 기기가 나온 것을 발견했다. 곧바로 예약구매를 했고, 기기가 도착한 다음날부터 나는 차를 버려둔 채 지하철로 출퇴근을 시작했다.

지하철에 아무리 사람이 많고 혼잡해도 나는 나만의 영화공간, 스포츠공간에 있었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어디를 가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 됐다. 괴롭기만 하던 이동시간이 여가시간으로 변한 것이다.

친구들이 약속시간에 늦어도 너그러워졌다. 기다리는 동안 포터블 미디어 플레이어(PMP)라고 불리는 이 기기 안의 세상에 빠져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 기기는 액정이 너무 작아 답답하기까지 한 DMB폰보다 화면이 2~3배 이상 크고, 기본적으로 사용자가 원하는 영상을 골라 볼 수 있는 온 디맨드(on demand) 기능을 지원하기 때문에 무척 편리하다.

이 기기를 들고 다니며 재미난 일도 많았다. 어느날 지하철에서 열심히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누가 옆구리를 찌르는 것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어떤 아주머니가 "저기, 지금 보는 드라마 나하고 같이 보면 안될까" 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또 한 번은 10시간이 넘는 외국출장길의 비행기 안에서 그 기기를 쓰고 있는데, 한 승무원이 와서 "너무 신기해서 그러는데, 저희들 구경 한 번 해도 될까요"라며 빌려가서는 1시간이 넘게 승무원들끼리 돌려 보는 바람에 내가 심심했던 적도 있다. 물론 와인 서비스를 받았지만. 나는 요즘 이 기기 덕분에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면서 몸무게도 5㎏이나 빼고 매달 휘발유 값도 20만원 이상 절약하고 있다. 또 무엇보다도 남들은 지옥철이라 부르는 곳에서 혼자 즐겁게 놀 수 있게 되었다.

● 이윤만 집착땐 '굴레'로 전락

기술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구현될 때 인간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다. 단지 자본의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술은 절대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다. 시장이 포화된 상태에서 그 위기를 탈출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술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술은 첫째도 둘째도 인간의 행복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술은 인간의 굴레가 될 뿐이다.

최항섭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디지털미래연구실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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