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굴뚝 산업’, 즉 전통적 제조업 시대에 만들어진 공정거래법이 과연 소프트웨어 산업 등 1980년대 이후 급성장한 ‘신경제’ 산업에 적용될 수 있느냐에 관해서는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다. 이 논의의 핵심에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둘러싼 일련의 반독점 사건이 있다.
특히 윈도우에 새로운 기능(미디어 재생, 메신저 기능 등)을 추가하는 것이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저해하고 경쟁을 봉쇄하는 ‘경쟁제한적 끼워 팔기’인지, 아니면 윈도우의 기능 향상을 통해 소비자 편익을 제고하고 보다 다양한 기능을 갖춘 응용프로그램의 개발을 촉진하는 ‘친경쟁적 기술 통합’인지에 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지난해 12월 공정위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미디어 재생 및 메신저 기능을 윈도우에 추가한 행위가 소비자에게 ‘자기가 구입하고자 하지 않는 상품의 구입을 강제함으로써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부당한 행위’이며, 나아가 ‘미디어플레이어, 메신저 등의 부상품 시장에서 경쟁을 봉쇄하고 독점화’했다고 심결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에 불복하는 소송을 지난달 법원에 제기했다.
필자는 마이크로소프트 측의 경제전문가로서 공정위 심의에 참여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미디어플레이어와 메신저 사용 행태에 대한 심도있는 조사를 하였으며, 그 결과 공정위의 심결이 우리나라의 현실과 괴리되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첫째, 공정위는 ‘구입강제성’의 판단에 있어 소프트웨어의 특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였다. 둘째,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메신저와 미디어플레이어간의 경쟁이 치열하며 그 결과 소비자들은 많은 혜택을 누려 왔다.
통상적인 끼워팔기의 경우 독점 사업자가 인기없는 상품을 인기있는 상품과 함께 강매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이 저해되며, 품질이나 가격에 의한 자유로운 경쟁이 저해된다.
하지만 메신저나 미디어플레이어는 통상적인 제조물과는 달리 인터넷을 통해 쉽게 무료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기 때문에, 메신저나 미디어플레이어 기능이 윈도우에 기본장착된다고 해도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이 저해되지 않는다. 실제로 초고속인터넷 보급율이 세계 1위인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복수의 메신저와 미디어플레이어를 사용하고 있다.(전문조사기관인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미디어플레이어 월평균 2.5개, 메신저 1.6개 사용)
더구나 다국적기업들과는 달리 국내 기업들은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원하는 기능을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인기가 아주 높다. 네이트온이 가장 대표적인 예로, 2003년 1월 출시된지 약 2년만에 마이크로소프트의 MSN 메신저를 추월하여 1위가 된 후 그 격차를 계속 확대해 왔다.
같은 때 출시된 곰 플레이어는 강력한 자막 기능, 코덱 자동 찾기 기능 등의 제공을 통해 지난 3년간 1,000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하였으며 현재 2위이다. 한편 마이크로소프트의 WMP는 1위이긴 하나, 자료가 수집된 지난 2년간 사용자 수가 1,400만명에 정체되어 있다.
만약 공정위의 경쟁제한성 이론이 옳다면, 이른바 ‘끼워팔기’ 행위가 시작된지 6년 이상이 경과하였으므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메신저나 미디어플레이어로의 쏠림 현상이 발생하였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정반대이며, 이는 공정위의 경쟁제한성 이론이 우리나라에 적용되지 않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상승ㆍ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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