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정몽구 회장을 구속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겉으론 “구속 여부에 대해 논의 중이다. 정 회장 조사 후에 결정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의례적인 말로 들린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23일 “정 회장이 혐의를 인정해도 구속ㆍ불구속을 결정하는 데는 영향이 없다”며 사실상 구속 쪽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내비쳤다. 채 기획관은 또 “정 회장이 정의선 기아차 사장보다 조사할 양과 범위가 넓다”고 밝혔다. 책임을 묻는다면 정 회장쪽에 더 무게를 두겠다는 뜻이다.
수사팀의 기류가 이처럼 강경한 이유는 수사 외적인 요소를 고려해도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 회장이 구속되면 그룹의 신인도가 하락하는 것은 물론 경제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실제로 정 회장 소환을 앞두고 경제계나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이 같은 분위기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검찰도 이 부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그러나 “검찰 내부에서 ‘정 회장이 불구속되고 정 사장이 구속된다면 문제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내부 기류를 전했다.
그룹을 이끌고 있는 정 회장이 실질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 경우 정 사장과 그룹 임원들은 처벌 수위가 낮아질 수 있다.
정 회장이 구속돼도 장기적으론 현대차 경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한 것 같다. 검찰은 과거 SK분식회계 수사 때 최태원 그룹 회장을 구속하면 기업활동이 급격히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최 회장을 구속 기소했다.
이후 SK그룹은 현재 투명경영에 대한 긍정적 분위기가 형성돼 오히려 경쟁력 있는 회사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검찰이 수 차례 “현대차는 1인 기업이 아니다”고 강조한 부분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정 회장의 영향력이 줄어 들더라도 시스템이 잘 갖춰진다면 현대차 입장에선 ‘전화위복’이 될 것이란 판단인 것이다.
검찰은 재계 서열 2위인 기업 총수가 구속될 경우 경제에 적지 않은 충격이 갈 수 있지만 석방될 기회가 많다는 점도 고려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검찰 관계자는 “정 회장이 구속되더라도 구속집행정지나 보석 등으로 풀려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검찰은 원칙대로 정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함으로써 여론의 부담을 피할 수 있고, 수사 외적인 요소는 법원이 판단해서 구속여부를 결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의 A부장판사도 “정 회장이 구속돼도 고령(68세)인 점이 감안돼 구속집행정지 등으로 일시적으로 풀려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검찰이 정 회장 처리에서 경제적인 파장 등 외적 요소들보다는 비리 단죄 의지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검찰이 정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을 경우 ‘재벌에 약한 검찰’ 이라는 비난이 따르는 등 역풍이 예상되는 상황도 강경론을 떠받치고 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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