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위기를 진화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은 소방수에 비유된다. 1994~2000년만 해도 IMF는 대륙을 넘나들며 세계경제의 급한 불을 껐다. 위기가 사라지자 거꾸로 IMF에 위기가 찾아왔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더 이상 화재경보가 울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8년 전 IMF에 매달려 구제금융을 받은 한국은 IMF가 보유하고 있는 외환(2,200억 달러) 만큼의 외환(2,170억 달러)을 가지고 있다. 차관 조기상환까지 이어져 현재 IMF에서 제공한 차관은 80년대 이래 최저인 350억 달러에 머물러 있다.
역할축소가 정체성 위기로 확산되자 IMF는 20일 개혁안을 공개했다. 세계은행과 함께 2차대전 이후 세계질서를 구축해온 IMF로선 61년 만의 변신이다.
로드리고 라토 총재가 공개한 개혁안은 크게 선진 강대국과 신흥경제국의 목소리를 동시에 반영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주요 내용은 22~23일 IMF_세계은행 춘계 연차총회와 9월 싱가포르 IMF 회동에서 핵심의제로 다뤄질 예정이다.
관심을 끄는 내용은 먼저 투표권(의결권)을 조정해 신흥경제국의 위상을 높여주겠다는 것이다. IMF는 경제력에 따라 국가별 출자 할당액을 정하고, 이 비중에 가중치를 둔 투표 지분율(쿼터)을 배분한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의 상위 5개국에 39% 넘게 할당되고 특히 미국에는 중요사안을 거부할 수 있는 17%가 배정돼 있다.
그러나 중국 쿼터가 일본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경제력이 한국의 3분의 1인 벨기에의 쿼터가 한국보다 3배 가량 많은 등 경제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기형적인 구조가 개혁안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인도 브라질은 물론 러시아 터키 등도 IMF에서 푸대접 받고 있다.
5년마다 이뤄지는 쿼터 조정은 184개 회원국의 85%(쿼터기준)가 찬성해야 가능하다. 그러나 IMF는 10월 주요국 재무장관 회담 이전에 특별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경우 한국은 지금의 두 배인 1.84%, 중국은 영국 프랑스를 앞지르는 7.56%으로 조정될 것으로 전해졌다.
개혁안은 IMF 협의 방식을 다자간 협의 틀로 옮기는 내용도 담고 있다. 라토 총재는 “선진7개국(G7)이 환율 협의를 독점하며 IMF를 들러리 세우던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국제 통화 정책의 감시ㆍ감독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에는 미국측 논리가 스며 있다.
미국은 중국이 환율조작 등으로 세계 경제 룰을 깨뜨리고 있다며 IMF가 이를 제어하길 요청해왔다. 이런 기류에는 1985년 5대국간 플라자 합의로 엔화와 마르크화를 절상했듯 위안화 절상용의 ‘제2 플라자 합의’를 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러나 다자간 합의로 결정된 조치가 구속력을 얻기는 어렵다.
무료 제공하던 경제 자문료의 유료화 등 수익 다변화도 개혁안에 포함돼 있다. 일감이 줄어 내년부터는 적자마저 예상되기 때문이다. IMF는 여의치 않으면 보관 중인 금(635억 달러 상당)을 매각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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