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우리측 동해 배타적경제수역(EEZ)내 수로 측량 계획으로 한일관계가 급랭한 가운데, 과거 양국 교류의 상징이었던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의 기록이 한글로 번역돼 나오고, 조선통신사 행렬이 재현되는 등 과거 양국관계를 되돌아보는 작업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조선시대에 두 나라는 왜구 출몰, 임진왜란 등으로 갈등을 겪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외교사절을 교환하며 선린우호를 다졌다. 통신사는 그 가운데 조선이 일본 막부에 파견한 공식 외교사절이다. 정사, 부사, 종사관 등 임금의 국서를 지닌 삼사(三使)를 포함, 300~500명에 이르는 규모였는데 일본 역시 큰 돈을 들여 일행을 환대했다. 사절 교환을 통해 두 나라는 문물을 주고 받고, 상대 국정을 탐색했으며, 때로는 포로 석방을 요청하기도 했다.
조선은 모두 12차례 통신사를 보냈다. 그 중 11번째 계미년(癸未年ㆍ1763년) 통신사행은 일본 에도(江戶, 지금의 도쿄)까지 다녀온 마지막 사행이다. 마지막 12번째 사절단은 쓰시마섬(對馬島)에서 귀환했다.
통신사는 귀국 후 사행 기록을 남겼는데, 계미 통신사는 무려 8편을 작성했다. 그 가운데 정사(正使ㆍ사행단 대표) 조엄(趙曮ㆍ1719~1777)의 ‘해사일기’만 번역돼 있었는데 최근 ‘화국지’ ‘승사록’ ‘일본록’ ‘일관기’ 등 4편이 한꺼번에 한글로 옮겨졌다. 번역 시작 3년 만이다. 박재금 김경숙 홍학희 김보경씨 등 이화여대 출신 한학도 4명이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옮겼다.
‘승사록’과 ‘화국지’는 조엄과 함께 일본으로 갔던 통신사 서기 원중거(元重擧) 의 저술이다. 원중거는 1763년 8월에 출발, 이듬해 7월에 귀국할 때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 형식의 기록을 남겼는데 이것이 ‘승사록’(번역서 이름은 ‘조선 후기 지식인, 일본과 만나다’)이다. 여정에서 만난 일본인, 정치 경제 종교 지리, 도로 항만 선박, 농사 농산물, 상인 시장 상품 등 일본 생활 전반에 대한 관찰이다.
통신사행에 대한 종합 평가와 총정리도 덧붙였다. ‘화국지’(‘와신상담의 마음으로 일본을 기록하다’)는 일본 문화 전반의 자료를 수집해 엮은, 백과사전적 문헌이다. 대일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일본에 제대로 대처하도록 하자는 취지를 갖고 있다.
‘일본록’(‘부사산 비파호를 날 듯이 건너’)은 서기 성대중(成大中ㆍ1732~1812)의 기록이다. 원중거와 마찬가지로 성대중도 영조에게 출발을 고하고 떠날 때부터 이듬해 귀향할 때까지의 전 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고 역사ㆍ지리적으로 고찰한 내용을 추가했다.
‘일관기’(‘붓끝으로 부사산 바람을 가르다’)는 제술관 남옥의 기록이다. 남옥은 사행 길에서 뛰어난 문재를 유감없이 펼쳐 일본인에게 깊은 인상을 심었다. 일본 문사들과 필담을 나누고 일반인의 요구에 일일이 응하느라 날을 새기 일쑤였다.
23일 인사동서 행렬 재현
한편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는 22일 오후 2시 연세대 상남경영원에서 ‘조선통신사와 한일 문화교류’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이어 23일 오후 3시부터는 창경궁에서 조선통신사 3사 임명식을 재현하고 5시30분부터는 ‘조선통신사 납시오!’라는 제목으로 인사동에서 통신사 행렬이 이어진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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