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민주주의는 간접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이다. 쉽게 말해, 주권자는 국민이지만 국민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가 대신 나라를 다스린다. 이는 국민이 대표들에게 어디까지 권한을 위임한 것인가 하는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탄핵과 행정수도 이전이 그 예다.
탄핵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이 헌법에 의해 정당하게 국민이 국회에 위임한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기에 직접 거리로 나와 저항했다.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가 대립한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은 정반대의 경우이다.
●FTA하라고 대통령 뽑아줬나
노무현 정부는 행정수도 이전이 대선 승리와 함께 노 대통령에게 위임된 정당한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탄핵 당시 직접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한 노무현 정부가 입장을 바꿔 대의민주주의의 우위를 주장한 것이다.
한나라당 역시 탄핵 때와는 정반대로 직접민주주의의 챔피언으로 변신해 국민투표를 요구했다. 결국 두 세력 다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이 없이 그때그때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주장하는 천박함을 보여준 것이지만 이 사건들이 시사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점이다.
최근 노무현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은 이 같은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은 21세기 한국경제 나아가 한국사회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 사안이다.
과연 2002년 대선에게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던진 국민들이 노 후보가 한미FTA를 체결하라고 표를 던져준 것일까? 다시 말해, 우리는 노 대통령에게 한미FTA를 체결하라고 위임해준 것인가?
노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반미면 어떠냐"고 큰 소리를 쳤지만 정작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 한미FTA를 추진하고 그를 위해 스크린쿼터를 반으로 줄일 것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도, 그처럼 열정적으로 노 후보를 위해 뛰어다녔겠느냐고 문성근씨와 명계남씨에게 묻고 싶다.
물론 대통령이 매 사안에 대해 국민의 의사를 묻고 정책을 펴나갈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이 같은 중대사안의 경우 최소한 국민적 토론을 조직하고 국민적 의견을 수렴해 합의를 만들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다른 정부도 아니고 참여정부를 자청해 왔지만 이 같은 노력은 전혀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이를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나섰다.
사실 노무현 정부의 최대 실책은 단순히 최악의 사회적 양극화를 야기한 것이 아니라 21세기 한국의 발전모형에 대한 국민적 논의를 조직하고 이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김대중 정부가 경제위기 상황에서 별 대안 없이 채택한 미국식의 신자유주의 모형을 그대로 답습했고 이제 한 발 더 나가 일방적으로 이의 극단적인 표현인 한미FTA를 추진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위기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참여정부라면 이제 위기도 넘겼고 이같은 논의를 조직했어야 했다.
●'나를 따르라'식 오만한 정책결정
그러나 "내가 세계경제를 제일 잘 아니까 내가 한 결정에 국민들은 무조건 따라오면 된다"는 계몽군주 식의 정책결정은 박정희 시대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개발독재가 개방독재로 바뀌었을 뿐이다. 아니 이에 반대하는 사람은 농민이건, 영화감독이건, 교사이건 "변화에 반대하는 수구세력"으로 모는 오만은 오히려 군사독재보다 더 심하다. 게다가 양극화의 원흉인 신자유주의를 극단적으로 추진하면서 양극화를 우려하며 '좌파 신자유주의'를 자처하니 웃음밖에 안 나온다.
한미FTA를 보면서 왜 정치철학자 루소가 현대민주주의를 "국민이 선거 때만 주인이 되고 선거만 끝나면 노예가 되는 제도"라며 민주주의의 위기를 이야기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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